4·3 '동백의 한'…제주는 '역사 왜곡' 성토

태영호 "4·3사건, 김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극우단체 잇단 폄훼·왜곡 시위

입력 : 2023-04-03 오후 4:26:11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 보수단체인 서북청년단이 탄 차량이 집회를 위해 진입하자 4·3 단체 관계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위로한 세월이 7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주도민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주 4·3 사건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는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발언 이후 시작된 극우 정당과 시민단체의 잇단 역사왜곡 집회·시위에 유족들과 제주도민들은 또다시 분노하는 분위기입니다.
 
4·3 상처 아물지 않았는데활개 치는 극우세력
 
3일 제주 전역에는 4·3 사건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도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들이 제주 곳곳에 내걸렸습니다. 이 현수막은 우리공화당과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등 4개 극우 정당과 자유논객연합이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극우단체가 4·3 추념식 당일인 이날 학살 주범인 '서북청년단' 이름으로 집회를 열려다 유족들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극우성향 단체들이 4·3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은 태영호 최고위원이 지난 2월13일 최고위원 후보였을 때 페이스북에 "4·3 사건은 명백히 김(일성)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언급한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주 4·3희생자유족회 등으로부터 역사적 사실과 다른 극우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태 최고위원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후 태 최고위원은 보수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4위로 최고위원으로 당선됐습니다.
 
태 최고위원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4·3 사건 관련 단체들의 사과 촉구에도 이를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은 폄훼하고 과만 부각하는 편파적 역사 교과서 문제도 바로 잡아야 한다"며 4·3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이 전 대통령의 공을 강조한 발언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2003년 정부가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북한이나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주류 역사학계에서 아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국가원수 중 첫 사과문재인정부 때 특별법 제정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합니다. 4·3 사건진상규명·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 따르면, 4·3 사건으로 인한 공식적인 희생자 수는 2020년 기준 1만 4532명입니다. 4·3사건 진상보고서에선 당시 인명피해를 최대 3만명으로 추정했습니다.
 
4·3 사건의 진상규명을 규명하고 관련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내용의 특별법은 사건이 종료된 지 45년이 지난 2000년 1월에 통과됐습니다. 이후 4·3 사건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라고 공식 인정한 것은 2003년 노무현정부 때입니다. 고 노무현 전 전통령은 그해 10월 국가원수 중 처음으로 유족들 앞에서 국가 폭력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이어 2014년 박근혜정부 때는 4·3 사건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제주 4·3 희생자들에 대한 보(배)상금 기준을 담고 있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21년 문재인정부 때였습니다.
 
지난달 9일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4·3 사건의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매번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4·3 사건 폄훼·왜곡 발언이 문제가 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유족들을 비롯해 도민들의 가슴에 상처가 덧씌워졌습니다.
 
4·3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날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4·3 사건 유족들을 비롯해 제주도민들은 태영호 최고위원의 왜곡된 망언이 다른 (극우)단체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극우단체들의 진실왜곡 집회·시위로 유족들에게 다시 한번 더 큰 상처를 주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제주 4·3희생자 유족회 등 단체들은 특별법을 개정해서 4·3 사건 왜곡 행위를 중단하고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박주용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