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받은 시각장애인이 말하는 '장애인 교육권'

"20년 넘게 시각장애인 교육환경 개선 노력해…이어가겠다"
"덕분에 제때 공부할 수 있었다는 말 들었을 때 큰 보람 느껴"
"장애인 교육권 보장돼야 자립도 가능…국가 지원 필요"

입력 : 2023-04-19 오후 5:20:32
 
 
[뉴스토마토 정동진 기자] "장애인의 교육권 보장은 당연히 돼야 하는 겁니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본인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에서 그런 부분들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해 줘야 사회에서도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나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18일 '2023 동행서울 누리축제'에서 서울특별시 장애인 인권 분야 복지상 대상을 수상한 유현서 씨는 <뉴스토마토>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가가 장애인의 교육권을 보장해 이들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립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유 씨는 2000년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 입사해 20여년 넘게 시각장애 관련 복지 분야에 종사하며 '동아 프라임 영한사전'의 전자·점자본을 제작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보화 교육프로그램 교육을 진행하는 등 시각장애인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는 현재 시각장애인들이 IT 활용법, 점역, 커피 제조 등 다양한 기술들을 익힐 수 있도록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며 ‘실로암 이러닝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닝 센터에서는 인터넷, 오피스 활용 등 정보화 교육, 점역교정사, 외국어 교육, 시각장애 교사 직무연수 등 평생교육, 문해, 운동발달, 설리번 온라인 클래스 등 220여 개의 콘텐츠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 약 1600여 명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유 씨는 이번 수상에 대해 "이 상에 어울리는 정도의 실적을 제가 쌓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20년 넘게 시각장애인들의 학습이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을 했던 것을 보고 추천해주신 것 같다"며 "앞으로도 시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탐색하고 그것을 교육과정으로 구현해 제공하는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서울특별시 복지상 대상 수상한 유현서씨. 좌측 첫번째 (사진 = 서울시)
 
다음은 유현서씨와의 일문일답입니다.
 
-학창시절 학습하실 때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은 무엇일까요
 
저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이라서 서울 종로구에 있는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기본적인 교과서 등은 다 지원이 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학업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중고등학교를 올라가 제가 꿈꾸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했을 때 관련 수험서라든지 학습서 참고서 등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6월이나 9월에 하는 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 같은 경우 다 응시할 수 있었지만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모의고사들은 점자 문제지나 음성형 문제지가 아예 제작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을 입학해서는 (필요한 도서를) 복지관이나 도서관에 점자책으로 만들어달라고 의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의뢰를 한다고 해서 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20년 넘게 시각장애인 교육자료와 프로그램을 만드시면서 보람이나 한계를 느끼신 적은 언제인가요
 
제가 16년 넘게 시각장애인 대체자료 도서를 제작했었는데, (기존 출판된 책을) 점자로 변환해 점자책을 제작하거나 대체자료를 만들었을 때 "덕분에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시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하는 리뷰를 받았을 때 큰 보람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비장애인들은 도서를 사면 바로 볼 수 있지만 저희 장애인들은 그런 게 불가능하다 보니 항상 뒤늦게 책을 읽게 되는 등의 불편함을 많이 겪습니다. 최근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 제작 사업을 많이 하고 있고 저희 기관도 그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 많이 개선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한 해 발간되는 책의 10% 정도만 시각장애인용 대체자료로 만들어지고 있어 한계를 느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직업능력개발훈련 (사진 =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장애인의 교육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최근 장애인들의 자립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다른 장애인 분야에서도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본인 스스로 살아가는 환경이 갖춰질 수 있기 위해서는 비장애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국가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100% 동등한 환경이 될 수는 없겠지만, 대학을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권이 보장돼야 장애인들도 경쟁력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나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회 구성원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합니다. 최근 장애인 평생 교육에 대해 국가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아직까지 장애인들의 평생 교육 참여율은 비장애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낮은 상태라 조금 아쉽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최근 교육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공단) 등이 시각장애인 초중고 학생들과 일부 대학생, 취업자들에게 '점자 정보 단말기'를 제공해 시각장애인들 스스로 학습을 하거나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는 등 환경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이 단말기가 거의 컴퓨터와 비슷한 역할을 해서, 한글 문서를 점자로 변환을 해주거나 미디어를 재생한다든지 카카오톡 등의 앱을 설치에 사용할 수도 있고 데이지라는 시각장애인용 도서 형태도 활용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600만 원에 육박해 개인적으로 구매하기는 어렵고, 공단 등의 대여사업에 기대고 있는 상황인데 보급 기준이 조금 빡빡해 모두가 기기를 사용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도권 밖에 있는 학생들이나 보급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시각장애인분들은 학습을 할 때 제대로 된 경쟁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들을 국가가 나서서 단말기의 보급 대수를 늘려주거나 기준을 좀 완화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대체자료 제작 등을 하다가) 교육 분야로 와서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여가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특히 이런 부분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 백화점이나 구청 내 문화센터라든지 이런 곳에서 무슨 교실 무슨 교실 하는 곳에 가기엔 문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저희 기관에서 하면 그래도 시각장애인분들을 많이 겪어본 강사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까 시각장애인분들이 여가 프로그램에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1년에 한두 개씩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진행하려고 합니다. 
 
인터뷰 답변중인 유현서씨 (사진 = 정동진 기자)
 
정동진 기자 com2d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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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