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경기도 파주시가 속칭 '용주골'로 불리는 성매매 집결지(집창촌) 폐쇄를 비롯해 지역 정비사업에 사활을 걸고 나섰습니다. 시민들도 도시 이미지 개선을 위한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지지 중입니다. 반면 현실은 완강한 대립입니다.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4월 기준으로 이곳엔 아직도 73개 업소가 성업 중입니다.(휴·폐업 제외) 성매매 업소 업주들, 주변 상권 등 이해관계자들은 도시 정비에 반발하면서 버티기에 돌입했습니다.
용주골로 불리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파주 연풍리 소재 성매매 집결지'입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뒤 파주에 미군부대가 배치되고, 휴가·외출을 나온 미군을 위한 클럽, 다방 등 유흥업소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함께 태동했습니다. 햇수로 따지면 60년이 훌쩍 넘습니다. 시간이 흘러 미군부대가 이전했지만, 이곳 명성을 듣고 성을 구매하려는 남성들이 찾아오면서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전국에서 성매매 집결지 정비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자 성매매 업주들과 업소 여성들도 단속을 피해 이곳으로 넘어왔습니다. 파주시에 따르면 올해 1월 성매매 업소는 105곳, 업소 여성은 20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남은 성매매 집결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유명한 곳입니다.
1960년대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소재 성매매 집결지(용주골) 전경. (사진=국가균형발전종합정보시스템)
김경일,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폐쇄 확고…지역사회도 '환영'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폐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들도 힘을 합쳤습니다. 서울의 청량리 588과 미아리 텍사스를 비롯해 전국의 유명한 성매매 집결지들도 부정적 인식과 정비사업, 재개발 등이 겹치며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는 당국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기생했습니다.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가 다시 전국적 이슈로 떠오른 건 2022년 7월 김경일 파주시장이 취임하면서입니다. 파주 출신인 김 시장은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문제와 그로 인해 파생된 악영향을 누구보다 잘 인지했습니다. 이에 김 시장은 올해 1월 성매매 집결지 정비계획을 '2023년 1호 결재'로 채택, 성매매 집결지 폐쇄와 도시 정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김 시장은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를 올해 안에 반드시 폐쇄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김 시장은 1호 결재 직후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전담할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습니다. 같은 달 26일엔 파주경찰서, 파주소방서와 업무협약도 맺었습니다. 파주경찰서와 소방서는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를 각각 '범죄예방구역'과 '화재안전중점관리대상지역'으로 지정해 단속·관리하고, 파주시는 불법행위를 단속하거나 반(反)성매매 인식 운동을 확산하는 전략입니다. 파주시는 이와 함께 2월 성매매 집결지에서 밀실 등을 불법 건축한 업소들을 일제 조사했고, 자진철거 유도 등 행정처분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도 "이번에야말로 숙원을 해결할 기회가 왔다"면서 파주시의 성매매 집결지 폐쇄 방침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청 별관에 놓인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소재 성매매 집결지' 현황판. 1월 기준으로 전체 105개 업소 중 영업은 74곳, 휴업은 16곳, 폐업은 15곳으로 집계됐다. (사진=뉴스토마토)
경찰-소방서 합동 단속에도 73곳 영업 중…"조직적 저항"
취재팀은 '2023년 1호 결재' 이후 넉 달이 지난 4월 말 파주시를 취재했습니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에 대한 시청의 강력한 드라이브, 경찰과 소방서의 합동단속, 시민 등 지역사회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업소는 여전히 성업 중이었습니다. 4월 말 기준으로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의 업소는 전체 105곳입니다. 이 가운데 휴업은 17곳, 폐업은 15곳입니다. 영업 중인 곳은 73곳으로, 전체 업소의 70%에 달합니다. 업소 여성은 20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파주시청 관계자는 "성매매 업소들과 주변 상권의 조직적 저항과 이기주의가 심하다"며 "휴업한 곳도 단속이 느슨해지면 언제든 영업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취재팀이 파주시에서 만난 시민들도 성매매 집결지를 두고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이기주의가 완전한 폐쇄를 가로막고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먼저 성매매 업주들은 김 시장의 요구처럼 당장 연내에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할 경우 먹고 살길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파주시청에 따르면 업주들은 '폐쇄 3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폐쇄를 하되 먹고 나갈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말입니다.
파주시청 관계자는 "업주들이 시청에 '업소를 폐쇄할 테니 반대급부로 보상금을 달라'는 요구를 한다"면서 "3.3㎡(1평)당 1000만원을 보상해 달라는 식"이라고 토로했습니다. 파주시 문산읍에 사는 전모씨도 "업주들은 지난 60년 동안 '먹고살 돈을 벌 시간을 달라'면서 계속 폐쇄를 유예했다"며 "지금 업주들이 말하는 '3년 유예'라는 건 2026년 지방선거 때까지 봐달라는 건데, 결국 지방선거 표를 빌미로 폐쇄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라고 의심했습니다. 이어 "2026년이 되면 또 다음 선거까지 유예를 요구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파주읍에 거주하는 이모씨는 "조직폭력배 출신인 일부 업주들은 '폐쇄하면 자살하겠다'라고 떠들고 다니고, 경찰은 혹시 불상사가 생길까 봐 함부로 진입하지 못한다"면서 "일부러 당국의 강경진압을 유도, 자신들이 피해자인 척 여론전을 하려는 의도도 보인다"고 했습니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 중 일부도 폐쇄에 반대하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여성들은 성매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업주들과 달리 모은 돈도, 지낼 곳도, 기술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해 봤자 다시 다른 곳에 가서 성매매를 해야 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그동안 지내던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가 문 닫는 걸 막겠다는 겁니다. 파주시청에 따르면,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가 전국에서 가장 큰 집창촌이 된 것은 타 지역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된 뒤 이곳까지 흘러온 여성들이 많아서라고 합니다. 이른바 '풍선효과'였습니다.
2023년 4월 말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소재 성매매 집결지(용주골)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주변 상권도 업주와 업소 여성들에게 기생하기 위해 폐쇄를 반대하는 중입니다. 이들은 주로 여성들이 이용하는 미용실과 세탁소, 식당, 옷가게 등입니다. 파주시청 관계자는 "업소 여성들은 일하는데 필요한 머리를 꾸미고 옷을 사고, 업소는 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이 쓸 콘돔과 음료수, 잡화 등을 주기적으로 산다"면서 "성매매 집결지 폐쇄가 이들 가게와 상권에 끼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한편, 파주시는 생계를 이유로 폐쇄에 반대하는 업소 여성들을 위해 '탈성매매'를 돕는 정책을 법제화했습니다. 지난 4월21일 시의회를 통과한 '성매매 피해자 등 자활지원 조례'입니다. 성매매를 그만둔 피해자에게 생계비와 주거지원비, 직업훈련비, 자립지원금 등을 2년에 걸쳐 약 4000만원 지급하는 내용입니다. 1년에 1000만~2000만원을 주는 다른 지자체보다 지원금액과 기간이 더 길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파주시청 관계자는 "업소 여성이 집결지 폐쇄 후에도 다른 곳에서 성매매를 하는 풍선효과를 막는 취지"라고 했습니다.
조례는 지난 9일 공포됐고, 공포일로부터 이틀 만인 11일 첫 수혜자가 나왔습니다.
최병호·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