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정동진 기자] 최근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재난·참사의 공통점이 있다면 명확한 진상규명 과정 없이 사회적 갈등으로 변질돼 제대로 출구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2022년 이태원 참사가 그랬습니다.
실제 사고 성격은 다르지만, 두 사건 모두 현재까지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희생자 지원, 재발방지대책 마련이란 기본공식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채 정치·이념적 도구로만 전락하고 있습니다.
9년째 표류하는 세월호 추모공간
얼마 전 세월호 9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4월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는 세월호 기억식 옆에서 예년과 마찬가지로 세월호 추모공원 반대 집회가 진행됐습니다.
이들은 확성기에 대고 화랑유원지에 건립할 예정인 세월호 희생자 추모시설인 생명안전공원을 ‘납골당’이라 폄훼하며 “건립 반대”를 외쳤습니다.
이들은 대형 깃발에 ‘세월호 납골당 결사반대’라고 적은 채 확성기로 추모사를 방해하며 추모시설 건립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4.16 생명안전공원 선포식 (사진 = 뉴시스)
당초 내년까지 안산 화랑호수 옆에 조성하기로 했던 생명안전공원은 지역주민 반대, 예산 편성 문제로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야 기본방향을 확정지었으며, 국제설계 공모, 총사업비 협의 등이 지체되면서 준공시기는 2024년에서 2년 이상 늦어질 전망입니다.
서울시의회 앞에 설치된 세월호 기억공간엔 매달 수백만원의 변상금이 부과되고 있습니다.
시의회가 지난 7월 부지 사용기간이 끝났다고 통보하면서 불법시설로 분류됐기 때문입니다.
가설건물로 지어진 기억공간은 당초 광화문 재구조화 공사를 이유로 광화문에서 임시로 옮겨온 것입니다.
작년 8월 광화문광장이 재구조화를 마치고 새단장했지만 기억공간의 자리는 없어졌습니다.
더군다나 당초 임시 거처 마련에 앞장섰던 시의회도 지방선거 이후 다수당이 바뀌면서 기억공간은 갈 곳 없는 신세가 됐습니다.
장동원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사무처 총괄팀장은 “세월호는 정쟁의 대상이 아닌데 정권이 바뀌고 여야가 의석수가 바뀌었다고 철거를 하라는 건 맞지 않다”며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이 앞으로 세월호 참사 같은 참사가 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인데 안산 추모공원 조성도 굉장히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의회 앞 기억관 (사진 = 뉴시스)
200일째 울고있는 이태원 유가족
이태원 참사 200일이 다 돼가지만 유가족들의 눈물은 그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겐 합법적인 추모공간조차 없습니다.
지난 2월 서울광장에 유가족들이 설치한 분향소(추모공간)는 서울시가 불법으로 규정하고 행정대집행을 준비 중입니다.
서울시는 당시 4월 초 철거를 조건으로 추모공간 조성 협의를 추진했으나, 유가족들은 서울광장 분향소 철거 여부를 자신들이 정하겠다며 거부했습니다.
이후 유가족 측과 서울시는 십수차례 대화에 나섰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이 대화는 끝나버렸습니다.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사진 = 뉴시스)
현재 유가족 측엔 불법사용에 대한 변상금이 부과된 상태입니다.
보수단체들은 서울시청 인근에 현수막을 내걸고 ‘오세훈 시장의 온정주의 행정 반대’, ‘이기주의의 절정, 징글징글한 떼법을 철폐하라’ 등을 주장하며 분향소 철거와 행정대집행 시행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유가족 측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참사 책임자의 진정성있는 사과, 실질적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가족 측은 “200일의 시간이 흐르도록 유가족들이 요구했던 대통령의 공식 사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파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당이 특별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대통령실이 침묵을 이어가면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겪었던 9년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상민 장관 파면 요구 기자회견 (사진 = 뉴시스)
추모공간을 사회 통합의 공간으로
전문가들은 추모공간을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사회 통합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세월호·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에 있어 추모공간이 단순히 유족들의 희생자 추모를 넘어 재난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시민들의 트라우마 치유 효과도 있다는 취지입니다.
제대로 된 추모공간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노력과 경험이 쌓이면서 치유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재난에 대한 기억은 물론 사회라는 공동체가 재난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겪었으나 테러가 일어난 장소에 10년 후 9.11 테러 추모 박물관을 건립했습니다. 박물관은 추모공간은 물론 학생들의 교육장소로 활용되며 수많은 미국인과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박물관 홈페이지에는 테러 당시 상황, 수습 과정, 피해자 현황 등을 알 수 있으며, 박물관 입구엔 ‘시간의 흐름도 결코 당신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추모공간이 단순히 피해자들을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트라우마를 힐링하는 치료 공간으로서도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가 있다”며 “시민들이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떠나보낼 때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힐링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추모 공간을 정쟁적인 요소로 활용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시민들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갈등 장기화로 사회적 비용 커져…문제는 해결 노력
사회적 재난의 갈등 장기화는 사회적 피로도를 높입니다. 피로도가 높아지며 각종 갈등과 분열을 낳으며 사회 통함의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갈등이 빚어졌을 때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 참여가 이뤄져야 하고 갈등 해소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장은 “갈등은 필연적인데 문제는 대응과 노력이 상당히 부족해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며 “갈등 당사자와의 어떤 협의를 통해서 상생적 문제 해결을 하기보다는 계속 명분 싸움만 해 갈등 해결을 위한 접근 태도에 있어서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공공기관이 갈등 해소를 위한 어떤 책무나 대응을 잘할 필요가 동기가 약해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며 “갈등이 장기화된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행정의 불신이 더 증폭되어지고 갈등 당사자의 골이 더 깊어져서 문제 해결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세월호 팽목기억관 (사진 = 정동진 기자)
박용준·정동진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