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유지 규정 완화, 좀비기업 방치 이어져

코스닥 상장사, 5년 연속 영업손실 기업 97개
수년째 적자기업, 주주배정 유증 통해 자본잠식 회피

입력 : 2023-05-2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한결·신대성 기자] 작년 말부터 국내 상장사들의 상장 유지 규정이 완화되면서 '좀비기업'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바뀐 제도는 상장폐지 실질심사 적용 기준인 자본잠식 기준(50% 이상 잠식)만을 유지하고 있어 유상증자와 감자 등으로 상폐를 피할 여지를 주고 있습니다. 제도 개정 전이었다면 5년 이상 영업적자로 상장 폐지 심사를 받았어야 할 기업들도 신주 발행과 감자를 통해 상장을 유지하는 기업들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습니다. 규제가 완화되기 전이었다면 이미 시장에서 퇴출됐어야 하는 곳들입니다. 
 
최근 5년 연속 영업이익 적자 코스닥 기업 현황1 (제약·바이오 기업 제외, 그래픽=뉴스토마토, 자료=에프엔가이드)
 
코스닥, 영업손실 관련 규정 삭제…상장사 97개 '안도'
 
2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최근 5년 연속 영업적자인 코스닥 기업은 97개사입니다. 해당 회사들은 상장 유지 규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상장폐지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됐을 텐데요. 하지만 작년 말부터 바뀐 상장 유지 관련 규정 개정으로 해당 회사들은 투자주의환기종목으로 지정만 되고 실질심사는 피하게 됐습니다.
 
작년 12월부터 유가증권(코스피)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 한국거래소가 개정한 상장 유지 규정이 적용됐습니다. 시장의 눈길을 끈 부분은 삭제된 규정들인데요. 개정 전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기업이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면 관리종목 지정 사유에 해당됐죠. 5년 연속 영업손실 시엔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됐습니다. 개정 후 이러한 요건들은 삭제됐고 투자자 보호 방안으로 5년 연속 영업손실 발생시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해 공시하고 있습니다.
 
안전장치로 구비된 영업손실 실질심사 사유가 삭제되면서 코스닥 시장에 '좀비기업' 방치가 심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좀비기업이란 통상 영업적자가 지속돼 자본잠식에 빠지는 기업을 뜻합니다. 과거 규정을 적용하면 코스닥 기업 중 최근 5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한 97개사는 사실상 좀비기업이란 해석이 가능합니다.
 
상장사, 상폐 관련 자본잠식 기준…유증으로 피할 수 있어
 
현재 남은 상장폐지 요건 중에는 자본잠식 기준이 있습니다. 코스닥 시장에서 2회 연속 자본잠식률 50%이상을 기록한다면 실질심사 전환대상 재무 관련 상장폐지 사유가 되는데요. 상장사는 무상감자, 유상증자 등으로 자본잠식을 피할 수 있습니다. 자본잠식이란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적은 상태를 일컫는데, 영업적자가 지속되면 기업은 원래 보유 중이던 자기자본이 줄어들게 됩니다. 쉽게 말해 최초 투자한 금액을 점차 까먹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영업적자가 지속되는 기업은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는데요. 개정된 현행 규정 상태에선 기업은 자금조달에만 성공할 수 있다면 자본잠식을 피할 수 있는 셈입니다. 최근 818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증을 결정한 진원생명과학(011000)은 18년째 수백억원의 적자를 기록 중입니다. 상장 유지 관련 제도가 개선되기 전에는 진원생명과학이 유가증권 상장사란 이유로 수년째 적자에도 자금조달을 꾸준히 하며 자본잠식을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진원생명과학은 2020년 이후에만 6번의 자금 조달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16일 결정한 818억원 규모의 유증을 포함하면 2020년 이후 회사는 3275억원 가량의 자금 조달에 성공해 현재 시가총액(3849억원)에 육박합니다. 이번 유증의 경우에도 한국투자증권과 한양증권이 잔액 인수 조건으로 실권주 전량을 인수할 예정인 만큼 최종적으로 목표한 자금 조달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적자기업, 자금조달 회사 투자주의 
 
투자자 입장에선 수년째 영업적자가 지속되는 기업의 자본잠식 가능성을 인지하고, 주주 대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는 기업에 대해 투자에 유의해야 합니다. 지난 5년간 영업손실을 기록 중인 코스닥 97개의 기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업종은 바이오 기업으로 총 31사입니다. 보통 제약·바이오 기업은 특성상 장기간 적자가 불가피한데요.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코스닥 시장에 바이오 기업들이 (기술특례를 통해) 많이 편입됐는데 바이오 기업 특성상 초창기부터 장기간 적자가 지속된 상장사가 많다"고 전했습니다.

최근 5년 연속 영업이익 적자 코스닥 기업 현황2 (제약·바이오 기업 제외, 그래픽=뉴스토마토, 자료=에프엔가이드)
 
제약·바이오를 제외한 코스닥 상장사 중 5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 중인 기업은 총 47사입니다. 의료장비 및 서비스 기업인 루닛(328130)CJ 바이오사이언스(311690), 이오플로우(294090), 퀀타매트릭스(317690), 뷰노(338220) 등을 비롯해 올리패스(244460)(개인생활용품), 자이언트스텝(289220)(미디어), 알체라(347860)(일반 소프트웨어), 제넨바이오(072520)(상업서비스) 등의 기업이 있죠.
 
이들 기업 중 최근 3년래 주주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한 기업은 이오플로우와 알체라 등이 꼽힙니다. 3자 배정 유증을 진행한 회사들은 CJ 바이오사이언스, 퀀타매트릭스, 뷰노, 올리패스, 자이언트스텝, 제넨바이오 등입니다. 루닛을 제외하고 모든 회사가 자금조달을 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주주에게 손을 벌린 기업은 이오플로우와 알체라가 눈에 띕니다.
 
이정환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 교수는 "상장사가 상장폐지가 된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금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증이 상폐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유증은 자본시장에서 원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기업이 유증을 해서 조달한 자금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5년 연속 영업이익 적자 코스닥 기업 현황3 (제약·바이오 기업 제외, 그래픽=뉴스토마토, 자료=에프엔가이드)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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