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재즈 대중화 '성큼'…빗속에서도 즐긴 '서울재즈페스티벌'

올해로 개최 15주년…그래미 재즈 거장부터 미카·데미안 라이스까지

입력 : 2023-05-30 오후 5: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오랫동안 재즈라는 장르는 변방의 음악 언어였습니다. 어쩌면 이름조차 없지만 아름답고 매혹적인 섬 같은 것.
 
반세기 전, 국내의 재즈 시장은 박성연·김준·신관웅 같은 한국 재즈 1세대들이 전후 상황에도 바닥부터 길을 닦아왔습니다. 오늘날에는 세계 다양한 연주자들이 한국으로 오고, 여러 지류로 뻗어가며 대중에 닿아오고 있습니다.
 
특히 공연 분야로 확장하면, 매년 봄 시즌 열리는 '서울재즈페스티벌(서재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해마다 가을 가평군 자라섬에서 열리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과 함께 한국 재즈 페스티벌의 양대 축으로 꼽힙니다.
 
그래미 2회를 수상한 재즈 보컬리스트 그레고리 포터가 올해 서재페의 첫 날 헤드라이너로 무대를 장식했다. 사진=서울재즈페스티벌·프라이빗커브
 
2007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 15주년을 맞은 서재페에는 그동안 수많은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출연해왔습니다. 팻 메스니, 허비 행콕 & 칙 코리아, 조지 벤슨, 다이안 리브스, 타워 오브 파워, 세르지오 멘데스, 램지 루이스, 카산드라 윌슨 같은 그래미를 휩쓴 재즈 거장들이 그간 메인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2011년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소수 재즈 아티스트들을 섭외해오다가, 2012년부터 올림픽공원으로 장소를 변경하면서 세계적인 재즈 음악가들을 데려오는 데 공을 들여왔습니다.
 
기본적으로 재즈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컨템포러리)에 빛나는 재즈뮤지션들도 참여하곤 합니다. 제이미 컬럼, 에스페란자 스팔딩, 로버트 글래스퍼, 조슈아 레드먼, 고고 펭귄 등 현 재즈계에서 주목받는 해외 뮤지션들도 무대를 빛냈습니다.
 
26일 저녁 7시경, 드럼과 바리톤 베이스가 리듬들을 쏟아내는 가운데, 굵은 금관통으로부터 쏟아지는 연주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을 파랗게 물들였습니다.(올해 행사는 잔디마당 외에도 KSPO돔, SK핸드볼경기장, 88호수수변무대 등에서 개최) "음악으로 이렇게 우리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요."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2016)', 영화 '바빌론(2022)' 등으로 '골든 글로브'와 '그래미 어워즈'를 휩쓴 미국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는 국내 연주자들과 합세해 꾸린 재즈 밴드로 열광적인 함성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라라랜드' OST 'Another day of sun'이 울려퍼지자, 현장 관객들이 영화처럼 춤을 추며 분위기를 만끽하는 진풍경도 펼쳐졌습니다.
 
미국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는 국내 연주자들과 합세해 꾸린 재즈 밴드로 라라랜드 OST 등을 라이브로 들려줬다. 사진=프라이빗커브
 
올해는 허위츠 외에도 다수 그래미 재즈 수상자들을 데려오면서 재즈에 방점을 찍는 무대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미 2회를 수상한 재즈 보컬리스트 그레고리 포터가 첫날 헤드라이너로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통상 5월 중하순에는 날씨가 맑아 재즈 팬들은 세르지오 멘데스는 팔순 나이가 무색할 만큼의 에너지로 ‘우중(雨中) 보사노바’의 낭만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래미 수상작인 1992년 발표 앨범 ‘Brasileiro’를 비롯해 힙합 등 다양한 장르까지 확장해가며 55장 이상의 명반을 발표한 거장입니다. 그래미 5회 수상자이자 ‘블루노트 간판스타’ 로버트 글래스퍼, 그래미 2회 수상 경력의 살사와 라틴 재즈밴드인 ‘스패니쉬 할렘 오케스트라’, 19살의 천재 재즈 피아니스트 조이 올렉산더처럼 현 시대 떠오르는 재즈 연주자들을 무대에 세운 섭외력도 눈에 띄었습니다.
 
서재페의 가장 큰 차별점이자 강점은 정통 재즈를 근본으로 삼되,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즈적 화성 플레이 혹은 분위기를 겸비한 팝과 록, 힙합 아티스트들을 무대에 세우면서 지난 15년 간 자체 고유의 라인업 색깔을 유지해온 게 ‘롱런’의 비결로 꼽힙니다. 첫날 영국 5인조 밴드 마마스건은 시종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는 건반과 특유의 소울 풍 목소리로 88호수수변무대를 적셨습니다.
 
그리고 장대비가 쏟아지던 마지막 날, 한국 애칭 ‘쌀아저씨’로 불리는 데미안 라이스의 무대는 첫날 미카의 무대와 함께 올해 축제의 최대 백미였습니다. 기타 한 대의 단출한 튕김과 보드라운 미성의 음성, 노란 조명 하나와 우비 위로 '또독또독' 떨어지는 빗소리들의 미니멀리즘 미학, 그러나 다시 아득한 파도처럼 전자음들의 음압(‘Astronaut’)과 후반부 흡사 라디오헤드 만큼이나 휘몰아치는 음의 정경(‘I remember’), 그리고 바다 위로 노를 젓는 듯한 쌀의 목소리… 그렇지, 재즈란 이렇게나 뭉근한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 빗속에 다 내려 놓고 경계를 넘어 하나 되는 것.
 
첫째날 'KSPO돔' 마지막 주자로 나선 영국 팝스타 미카의 무대. 사진=프라이빗커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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