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지하 기자] 유럽연합(EU)이 '탈착형 배터리 스마트폰 의무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배터리 일체형 스마트폰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전자는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였습니다. EU 규제에 맞추려면 스마트폰 방수·방진 기능의 성능 제한과 제품 설계 전면 변경이 불가피해 막대한 추가 비용도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반년 전부터 본격화했지만 정부는 세부안이 나올 때까지 적극적인 대처를 뒤로 미루는 모습입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초 EU가 추진 중인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이하 배터리법)'에 담긴 스마트폰 배터리 규정과 관련해 산업부에 '기술적으로 어렵고 안전상 문제도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올 초 한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며 "삼성전자로부터 탈착식 배터리 구조는 방수와 방진 기능 지원이 어렵고, 배터리 자가 교체 또는 수리 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등에 대한 우려를 전달받았다"고 말했습니다.
EU는 친환경성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배터리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최근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EU 이사회 승인과 관보 게재를 거쳐 발효됩니다. 법안에는 EU 시장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 등 배터리는 '소비자들이 쉽게 분리하고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는 사실상 '탈부착 배터리 의무화'를 시사합니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EU의 스마트폰 배터리 규제와 관련해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는 특별히 바뀔 게 없어 보인다"며 "결국 스마트폰 디자인 자체를 아예 바꾸는 방안으로 제조사들이 움직일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를 교환하면서 방수와 방진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분리형 배터리를 앞으로 출시할 스마트폰에서 구현하려면 또 다른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에 혁신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EU 집행위. 사진=연합뉴스
EU의 스마트폰 배터리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한 시점은 지난해 12월입니다.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스마트폰의 탈착형 배터리 설계 의무화에 입법기관 간 잠정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삼성전자는 서둘러 산업부를 방문해 유럽 시장에서 자사의 스마트폰 사업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라며, 해당 법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산업부는 삼성전자와 한 차례 회의를 가진 것 외에는 반년이란 시간 동안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현안에 대한 세부 규칙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결국 EU의 스마트폰 배터리 규제 내용은 이달 본회의에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해당 규정이 적용되는 시점은 2027년으로 예상됩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사안의 크기에 따라 대응 방식에 차이는 있다"면서도 "보통 EU의 법안이 입법예고 단계에 들어서면 기술 규제를 분석하고 관련 기업 의견 수렴을 시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위 법령들의 윤곽이 잡혀야 가능한 일"이라며 "법안 자체가 완전히 마련되고 확정될 때 대응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절차에 맞춰 대응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이 법안이 발효되면 삼성전자의 유럽 스마트폰 사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삼성전자는 플래그십 갤럭시 S·Z 시리즈와 중저가 스마트폰 라인업을 강화하며 유럽 시장에서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안이 발효되면 삼성전자는 EU가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기 위해 스마트폰 제품 설계부터 제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정을 대폭 변경하는 등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산업부의 태도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황용식 세종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우리 기업들에게 영향을 덜 미친다고 해도 혹여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업계 관계자들에게 문의를 하는 등 검토 과정을 거쳐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정부 기관의 역할"이라며 "정부 부처가 좀 더 적극성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니다. 이어 "이제는 기업이 홀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국가 간 정부 부처들끼리도 서로 경쟁하는 시대"라며 "정부 역할과 입김, 개입이 강해진 시대 흐름을 산업부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신지하 기자 a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