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부에 예산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내가 더 탄약을 많이 사야 한다"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강력한 힘만이 평화 보장? 그건 필요조건일 뿐

입력 : 2023-06-30 오전 6:00:0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4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방문해 KF-21 등 전시된 전투기 및 헬기를 참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우리의 압도적인 힘만이 적에게 구걸하는 가짜 평화가 아닌, 진짜 평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1차 연평해전 승전 24주년, 6월 15일 페이스북), "강력한 힘만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합니다"(6.25전쟁 발발 73년, 6월 25일 페이스북)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들어 부쩍 국방력 강화를 독려하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급격하게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겠으나, 국내정치용 성격이 짙습니다. 전임 문재인정부가 북한에 굴종적 태도를 가지면서, 국방력 강화에 소홀했다는 시각을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사실과 완전히 다릅니다. 문재인정부의 국방비 증가율은 6.30%로 이명박정부(5.32%)와 박근혜정부(3.99%)를 압도합니다. 문재인정부 5년간 총 국방비는 250조원으로 이명박·박근혜정부 9년간 쓴 309조원에 불과 60조원이 적습니다.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세계 7번째로 확보했으며, 항공우주·방위산업의 결정적 족쇄였던 한미 미사일 지침을 폐기했습니다.
 
2017년에 세계 12위이던 군사력은 2020~2021년에 세계 6위로 뛰어오르면서, 북한이 단계적 군축까지 약속(4·27 판문점 선언)해놓고 역대급 군비증강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까지 했습니다. 대표적인 군사국가인 북한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군 면제자인 윤 대통령이 군사지도자 면모를 보이려 하는 것만큼이나 어색하지만, 북한은 실제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윤 대통령 강조하는 '힘을 통한 평화'…사실은 문 전 대통령 단골 표현
 
윤 대통령이 즐겨 쓰는 '힘을 통한 평화'도, 사실은 문 전 대통령의 단골 표현입니다. 문 전 대통령은 국군의날 기념사나 SLBM 발사가 가능한 도산안창호함 진수식 같은 대규모 행사 축사 때 반복적으로 이 표현을 썼으나, 국방력 강화만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이 윤 대통령과 결정적 차이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겁니다. 과연 강력한 힘'만'이 평화를 보장하는 것일까요?
 
46년에 걸친 소련과의 대결에서 완벽하게 승리한 미국은 1993년에 클린턴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당시의 미국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초강대국이었습니다. 그 시기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강국이었습니다.
 
스탠퍼드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사회주의를 이김으로써 사회제도의 발전이 종결됐다며 <역사의 종언>을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미래에는 거대한 이슈를 둘러싼 투쟁이나 갈등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장군이나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주로 경제활동만 남게 될 것이라고도 했는데, 이런 어마무시한 헛소리마저 받아들여지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3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은 그때보다 더 안전하고 또 미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해온 세계는 더 안전해졌습니까?
 
하버드 케네디스쿨 국제관계학과의 스티븐 월트 교수는 "어떤 잣대로 보더라도 미국이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안보환경은 1993년보다 더 나빠졌고, 이런 환경에서 미국의 전반적 입지도 약화됐다"(<미국외교의 대전략: 자유주의 패권의 연장인가, 역외균형으로의 복귀인가> 2018년)고 답합니다.
 
냉전 승리 초강대국 미국, 30년 지난 현재 미국과 세계 더 안전해졌나?
 
1990년대 미국의 국방예산은 2위부터 20위 국가들의 국방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았고, 전 세계에 군대를 파견한 유일한 국가였고, 전 세계 원하는 모든 곳에서 결정적인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현재도 미국은 2위~17위 국가들 국방예산 전체 만큼의 국방비를 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미국 지도자들은 일부 핵심지역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대신 미국이 지향하는 모습대로 세계의 많은 지역을 개조하려고 했다. 이러한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전략은 자유주의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목표하에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그리고 기타 자유주의 원칙들을 널리 확산시키려고 했다. 이상주의적 비전으로 말미암아 NATO가 제한없이 확대됐고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했으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확대되는 한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비롯한 다른 여러 지역에서 정권교체의 민주주의 증진시도가 되풀이 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전략은 거의 실패로 점철됐다."
 
시카고 대학의 존 미어샤이머와 함께 현재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대표 격인 월트 교수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근거한 가치외교, 피아를 분명하게 가르는 진영외교, 국방 올인 안보 정책 등 윤석열정부가 보이는 행태는 월트 교수가 비판한 지난 30년 미국의 모습과 그대로 겹칩니다.
 
월트 교수는 미국이 이런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전략'을 구사한 것은 클린턴정부, 아들 부시정부, 오바마정부를 막론하고 막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 때문이라고 지적했는데, 윤석열정부 외교안보 분야 핵심인사들도 네오콘의 특징을 그대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 (사진=뉴시스)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가 스티븐 월트 "군사력을 최우선이 아닌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해야"
 
월트 교수는 네오콘 같은 군사력 우선주의자들을 향해, 외교를 우선시한다고 해서 군사력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며 군사력을 최우선이 아닌 최후의 수단으로 그리고 국가운영의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책에만 파묻혀 사는 교수의 말이라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면, "국무부에 예산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내가 더 탄약을 많이 사야 한다"(If you don’t fully fund the State Department, then I need to buy more ammunition)는 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장관의 경고는 어떻습니까.
 
'해병대와 결혼한 사나이', '미친개'라는 말을 듣는 뼛속까지 군인인 그가 미군 중부사령관 시절에 한 말입니다. 군사력은 안보의 필요조건일 뿐이고, 외교와 함께 가야만 한다는 겁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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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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