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이후 공개석상마다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작 ‘자유’에 관심이나 있는지 의심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최근 이 인사를 대통령 특별보좌관에 임명하는 것을 보면서 의심은 이제 확신에 가까워졌습니다. 특히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확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대통령 문화체육특별보좌관으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문화체육특보는 이번에 신설된 장관급 자리로, 유 특보는 앞으로 문화예술 정책과 관련해 윤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블랙리스트 망령의 귀환’이라고 평합니다. 그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로까지 이어지는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블랙리스트) 사건’의 시작점에 있는 인물로 의심되는 탓입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소위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을 정부가 검열하여 지원을 중단하거나 출연하지 못하도록 불이익을 준 권력 농단을 말합니다.
유 특보는 해당 논란이 언급될 때마다 자신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지난 201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내가 장관 때는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거나 주도했다는 실체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 특보가 “좌파 권력을 필터링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본 목격자들이 있고, 2017년 국정원 개혁발전위 자료에 따르면, 2009년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취임한 이후 국정원에서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 특보가 장관으로 활동한 지 1년여가 채 안 된 시점입니다.
TF는 조정래·문성근·박찬욱·봉준호·김미화 등 82명을 퇴출 대상 명단에 올리고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활동 내용은 ‘VIP(대통령) 일일보고’, ‘BH(청와대) 요청자료’ 등의 형태로 보고됐습니다.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내용을 정말로 유 특보가 몰랐을지 의심은 되지만, 유 특보 본인이 계속 부인하고 있으니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 특보도 부인하지 못하는 행적 하나가 있습니다. 그가 2008년 3월 장관이 되자마자 ‘정권의 홍위병’이 되어 공직에 있던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을 찍어내는 데 앞장섰던 일입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황지우 한예종 총장,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당시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을 대거 해임하면서 문화예술계가 깊은 상처를 입어야만 했습니다.
화려하게 복귀한 유 특보를 바라보는 문화예술인들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혹자는 ‘블랙리스트 망령의 귀환’이라고, 또 다른 이는 ‘블랙리스트 시즌3’이라고 합니다. 이미 윤석열정부에서 △문체부의 ‘윤석열차’ 관련 경고 △EBS 다큐멘터리 ‘금정굴 이야기’ 방송 불가 판정 △부마 민주항쟁 기념식에 가수 이랑 출연 배제 △광주시의 5·18 거리미술전 후원 명칭 삭제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돌아온 유 특보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우려는 기우일까요, 아니면 경험에 근거한 합리적 예견일까요. 전자이길 간절히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슬픈 예감은 늘 틀리지가 않더군요. 앞으로 더 엄혹한 시기가 올 것 같습니다. 옷깃을 세우고 겨울을 대비해야 할 듯합니다. 겨울 뒤 봄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유연석 탐사보도 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