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드럼 세트의 큰 북과 하이햇을 슬로우템포로 두드린 뒤, 강물처럼 고요하게 번지는 무그 신디사이저의 건반 울림. 보랏빛 조명이 벨벳처럼 공연장 뒤편 커튼을 안온하게 감쌀 때, 얼음 절경 속 노란빛 작은 손전등처럼 켜지는 목소리….(곡 'higher')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무신사개러지에서 6년 만에 연 아우스게일의 내한 단독 공연은 흔히 '세계의 끝'이라 일컫는 그 나라 풍경의 청각적 현현(顯現)을 경험하는 자리였습니다. 소리 진동 만으로 상상을 일렁이는 화산지형과 얼음의 흑백대비, 여름이면 백야가 밤에는 오로라가 펼쳐지는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를요.
아우스게일은 데미안 라이스(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사운드에 시규어로스(아이슬란드 대표 록 밴드) 감성을 녹여낸 음악가로 2012년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습니다. 인구 40명의 작은 마을인 루가바키(Laugarbakki)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연주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직접 만든 데모를 프로듀서에게 보내기 시작해 만든 데뷔작 ‘죽음의 침묵 속에서 핀 영광(Dyrð i dauðaþogn)’은 발표 즉시 아이슬란드 차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음반 역시 국민 10명 중 1명이 갖고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무신사개러지에서 6년 만에 연 아우스게일의 내한 단독 공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14년에는 데뷔작 영어 가사 버전 앨범 'In The Silence'의 연이은 성공으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단독 공연을 매진시키는 등 글로벌 팬의 마음까지 사로 잡았습니다. 2017년 2집 앨범 'After Glow'는 포크와 전자음을 뒤섞은 인디 포크, 얼터너티브 컨트리,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까지 확장한 11개의 트랙으로 아이슬란드의 신비로운 풍광을 담아냈습니다. 특히 따뜻하고 섬세한 멜로디로 알앤비부터 가스펠까지 소화하는 아우스게일의 보컬은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나 본이베어(Bon Iver)를 연상시키도 합니다.
그의 음악은 대체로 아이슬란드 자연 자체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공간감 큰 사운드는 시골 마을 고향 집에서 조용히 연주하고 녹음했다고.
2017년 본보 기자는 아이슬란드를 직접 여행한 적이 있는데, 아우스게일의 음악은 그 자연 풍광과 아주 닮아 있었습니다. 신디사이저의 반짝이는 선율이 검은 모래 해변가의 주상절리처럼 쪼개질 땐('borderland') 꼭 숲속의 요정들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직접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아르페지오를 아름답게 그려낼 땐('Summer Guest') 광활한 도로 위를 내달리다 우연히 보게 된 엘크 무리 떼들이 자연스레 연상됐습니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무신사개러지에서 6년 만에 연 아우스게일의 내한 단독 공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가을 같은 여름'을 지닌 이 국가의 오묘한 날씨처럼 상쾌한 향이 감도는 음악들은 특유의 몽환적이고 희망적인 선율이 특징입니다. 다만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3집 'Bury The Moon', 4집 'Time On My Hands' 내 수록곡들에선 광광대는 전자음이나 간헐적 끊김들('snowblind'), 사이렌 울림이나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실험적인 효과음들이 돋보였습니다. 스케일을 확장시켜주는 사운드는 중력을 거슬러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아이슬란드 간헐천 '게이시르'처럼 터져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6년 만에 한국에 오게 돼 반갑다"는 멘트 외 별다른 말은 없었어도, 이날 공연은 합장하며 인사한 마지막까지 따뜻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대표곡 'King and Cross'와 마지막 앙코르곡 'Torrent'를 열창할 때 방방 뜨는 관객들을 보며, 그 풍광 그 시간 어딘가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더라도, 한치 앞만 가면 무지개가 뜨는 아이슬란드 어느 도로의 풍광처럼, 솜사탕의 실오라기처럼 아름답게 너울거리는 초록빛 오로라와 거대 빙하 계곡 아래 유영하는 오리 떼들을 만난 그 반가움의 순간처럼.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무신사개러지에서 6년 만에 연 아우스게일의 내한 단독 공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