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밸리의 '영화 음악', 분홍 노을이 보이나요

"우리 음악, 실연 경험하고 성장하는 한 편의 영화 같은 것"
지난해 이어 두 번째 내한…"요즘 K팝 중 뉴진스 꽂혀"

입력 : 2023-08-02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03년,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색적인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에 청각적 캔버스를 프리즘처럼 투과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상실감, 성장, 20대 후반으로의 진입, 사랑…. 인간으로서 느끼거나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소리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달콤 사탕처럼 톡톡 터지는듯하다가도, 새벽녘 자욱한 안개 같은 멜랑꼴리 음악을 두르고,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1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캐나다 출신의 팝 밴드 밸리(Valley) 멤버들, 롭 라스카(보컬), 마이클 브랜돌리노(기타), 알렉 디마우로(베이스), 카라 제임스(드럼)은 "여러 장르와 사운드의 음악적 실험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라며 "이제 우리 음악은 실연이나 아픔을 경험하고 성장해가는 한 편의 영화 같은 것"이라며 웃어보였습니다. 
 
1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캐나다 출신의 팝 밴드 밸리(Valley) 멤버들, 마이클 브랜돌리노(기타), 알렉 디마우로(베이스), 롭 라스카(보컬), 카라 제임스(드럼). 사진=유니버설뮤직
 
밸리는 201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결성됐습니다. 2015년 첫 EP 'Car Test'로 시작해 이듬해 첫 데뷔 정규 음반 'This Room Is White'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Nevermind(2020)'와 'Hiccup(2020)' 같은 싱글들과 'Maybe(2019)', 'Last Birthday(2022)' 같은 EP, 지난해 정규 2집 'Lost In Translation'을 내왔습니다. 드레이크, 저스틴 비버, 더 위켄드, 알리샤 카라, 숀 멘데스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배출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우리 고향에서 나왔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특히, 대표곡 'Like 1999'가 틱톡 같은 숏폼에서 터지며 유명해졌습니다. 1999년은 제목부터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합니다. 금 모으기 운동과 지독한 경제위기 직후, 마이클 잭슨이 내한 단독 무대를 꾸미던 문화 융성의 해. 90년대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지도 않은 이들(멤버 모두 1995년생)의 노랫말('프렌즈를 보고, 인터넷도 없던, Y2K(곡 'Like 1999' 가사)')에 세계 Z세대들에게 물드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Like 1999'의 인기는 일종의 '사고' 같은 것이었어요. 팬데믹 기간이기도 해서 핸드폰에 몰입하던 이들이 노스텔지어를 느낀 영향이 있었을 거라 봐요. 우리 음악이 도피처를 꿈꾸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알렉)
 
1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캐나다 출신의 팝 밴드 밸리(Valley) 멤버들, 마이클 브랜돌리노(기타), 알렉 디마우로(베이스), 롭 라스카(보컬), 카라 제임스(드럼). 사진=유니버설뮤직
 
상쾌한 가을 바람과 맑은 햇살이 연상되는 현대적인 팝 사운드, 주로 신디사이저와 기타효과로 만들어내는 말랑한 팝 멜로디에서는 고즈넉한 자연미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 타격이 뒤쫓으며 그려내는 역동성은, 단순히 정적이기만 한 감상용 음악은 아닙니다. 지난해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무대에서는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공중 회전을 하는가 하면, 객석으로 돌진하며 현장을 달궜습니다.
 
"작년 첫 한국 방문 때는 라디오 방송 출근 차 '9호선 지옥철'도 타봤고,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의 야구 경기도 관람했어요. 어제도 삼겹살(K-바베큐)를 먹고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1시간 동안 간식들을 구경했는데, 작은 경험들 하나하나가 모두 신선해요. 조금 더 정기적으로 온다면 해보고 싶은 게 늘어날 것 같아요."(롭)
 
K팝과도 접점이 있습니다. 지난해 'Like 1999'는 국내에서도 엑소 디오, 데이식스 원필 등 K팝 아이돌들이 추천해 유명해졌습니다. "요즘은 뉴진스에 꽂혀 있습니다. 작년 투어 때도 (유니버설뮤직 직원분의 추천으로) 곡 '하이프 보이'를 듣고 좋은 노래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질 줄은 몰랐어요."
 
오렌지 색깔 생기있는 헤어 스타일, 자유분방한 패션 차림들, 밝고 친절한 모습들. "롭-알렉, 마이클과 제가 각각 다른 밴드에서 시작했었는데, 한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만난 첫 순간 스파크가 튀었어요. 서로 부족한 점 채워주면서 8년간 음악 동료이자 친구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주기적으로 심리 상담도 받곤 합니다. 결국에는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목표고, 네 명이 친구 사이로 시작했다는 걸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일 저녁, 예스24라이브홀에서 첫 내한 단독 공연을 엽니다.
 
지난해 '슬라슬라' 무대에서 밸리 멤버들. 사진=프라이빗커브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여행지라든지, 특정 공간 같은 것에 비유하면 어떤 곳이 좋겠다고 묻자 네 명 모두가 대답을 해야할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유타주에 있는 사막 가운데서 차를 몰고 가는 그런 곳과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카라)
 
"어제 비행기에서 본 노을이 솜사탕처럼 분홍색이라 생각했는데 딱 우리 음악 같다고 느꼈어요. 차 뒤 편에 앉아 노을 지는 시골길을 지나면서 헤드폰끼고 듣는 음악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롭)
 
"저는 노을 지거나 밤에 드라이브를 즐기기 때문에, 별이 빛나는 밤에 듣기 좋은 음악이라 생각해요."(알렉)
 
"구름 속에서 패러슈팅하는 느낌이라면 비슷할 겁니다. 어딘가 떠 있는 듯한 음악이므로. 가사를 보면 생각에 잠기게 하는, 두렵기도 하고 겁이나기도 하지만, 기분 좋고 꿈꾸는 가사도 있기 때문에. 음악을 듣고서 불편함 속에서도 편안함을 찾을 수 있다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마이클)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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