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고은하 기자] 최근 오프라인 유통의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편의점 업계만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과거 편의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담배 가게 정도로 인식됐을 뿐, 선호하는 채널은 아니었습니다. 애매한 가격, 다양하지 못한 상품, 점포 난립 등으로 백화점은 물론 대형마트에 비해 비교 우위에 설만한 요소들이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편의점 업계는 본연의 역할을 넘어 배달, 세탁 등 소비자들에게 생활형 밀착형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업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외부 활동이 제한됐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뛰어난 소비 접근성이 부각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춤했던 대형마트를 넘어 백화점까지 거세게 추격하는 등 향후 1~2년 내 유통 왕좌 채널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옵니다.
편의점 매출, 백화점 바짝 추격…1~2년 내 뒤집힐 수도
(제작=뉴스토마토)
17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사한 '올해 상반기 유통 업체 업태별 매출 구성비'에 따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채널은 이커머스로 49.8%를 차지했고, 이어 △백화점 17.6% △편의점 16.6% △대형마트 13.3% △기업형 슈퍼마켓(SSM) 2.8%로 나타났습니다. 백화점과 편의점의 매출 구성비 차이는 불과 1%포인트에 불과합니다.
그간 편의점 매출 규모는 백화점은 물론 대형마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통계를 살펴보면 편의점이 이미 대형마트와는 상당한 격차를 벌렸고, 백화점도 거의 다 따라잡은 형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편의점의 약진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이후 통계 추이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편의점 매출 구성비는 △2020년 17% △2021년 16% △2022년 16.2%로 2년 전부터 꾸준히 우상향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대형마트는 △2020년 18% △2021년 15.7% △2022년 14.5%로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 백화점은 △2020년 15% △2021년 16.8% △2022년 17.8%로 지난해까지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올 상반기부터는 상승폭이 꺾인 모습입니다.
사실 편의점 매출은 팬데믹 원년 시기인 2020년에 백화점을 앞지른 바 있는데요. 이 당시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극도로 외부 활동이 제한돼 백화점 등 대형 점포의 방역 셧다운이 빈번했고, 접근성이 우수한 편의점으로 고객이 몰렸기에 일시적인 상황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올해 통계는 코로나19 엔데믹 시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편의점, 백화점, 대형마트 모두 외부 활동이 풀렸다는 동일한 조건 하에서 나온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2~3년 추이 대로라면 조만간 편의점과 백화점의 순위가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접근성 및 실험적 시도 용이한 여건 갖춰
이처럼 편의점이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판도를 뒤흔드는 것은 특유의 뛰어난 접근성이 한몫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영업 중인 편의점 수는 약 5만4000곳으로 추산되는데요.
이는 전년 대비 4000여개 증가한 수치이며, 편의점 왕국인 일본의 5만6000곳에 필적하는 수준입니다. 일본 인구수가 우리나라의 약 3배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편의점 숫자는 우리가 더 많다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포화상태가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는 실정인데요. 오히려 이 같은 풍부한 점포 수가 방대한 유통망으로 작용해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더욱 높인다는 분석입니다.
정환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업태 간 매출 순위 변동은 계절성이나 경제 불황 등 일시적인 요인의 영향도 있긴 하겠지만, 구조적으로 편의점의 성장은 어느 정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편의점은 오프라인 업체들 중 공간적인 편의성 측면에 있어 단점이 최소화된 형태"라고 말했습니다.
백화점, 대형마트와 비교해 규모가 작은 것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편의점이 기업 입장에서 다양한 수요층의 반응을 기민하게 살피고 보다 실험적 시도에 나서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가성비가 우수한 자체브랜드(PB) 상품 판매, '1+1' 혹은 '1+2' 행사, MZ(밀레니얼+Z) 세대를 겨냥한 콜라보레이션 상품 등 이색적인 마케팅 실시 등이 모두 편의점에서 선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형 점포와 비교해 고객 반응 및 피드백 반영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시로 다채로운 콘텐츠를 접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최근 수년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가팔라지는 금리 상승도 백화점보다는 덩치가 작은 편의점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의 경우 단가가 높은 고가품이 주력 품목이다 보니 불경기를 맞이하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경향을 보이지만, 편의점은 골목 상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경기 진폭에 큰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2.3%까지 둔화됐지만 최근 잇따른 폭우, 국제 식량 가격 상승 등 하반기에는 물가 상방 압력이 가득한 상황입니다. 예상보다 소비 심리 회복이 빨리 이뤄지지 않을 경우, 편의점과 백화점의 매출 순위 변화 시기도 더 앞당겨질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외식 물가에 대한 부담에 가성비 중심의 편의점 성장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물가 상황에 비교적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간편식, 밀키트 등을 찾는 고객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편의점의 초특가 행사가 고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과 같은 극한의 날씨에도 편의점이 유리하다는 분석입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객들은)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춥다면 대형마트에 가지 않는다"며 "편의점은 동네마다 있고 이동이 워낙 편리해 기후 온난화에도 힘을 받기 쉬운 형태의 점포"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고은하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