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EV9·레이EV 엇갈린 희비…"전기차는 가성비"

EV9 올해 3685대 그쳐…출시 3개월만 재고 쌓여
레이EV 사전계약 6000대, 올해 판매목표 4000대 넘어
전기차 시장 '고급·대형→보급·중소형' 재편
중국산 LFP 배터리, 가성비 전기차 경쟁 불붙여
기아 EV5·EV3, 현대차 캐스퍼EV 출격 앞둬

입력 : 2023-10-05 오후 3:03:09
 
[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기아(000270)가 올해 출시한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과 경형 전기차 레이 EV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국산 최초의 대형 전기 SUV라는 타이틀에 현대차(005380)그룹 첨단기술이 대거 적용돼 역대급 관심도를 보였던 EV9은 판매량이 급감한 반면 레이 EV는 사전계약에서만 올해 판매 목표를 초과하며 높은 인기를 자랑했는데요.
 
업계에선 그동안 프리미엄 차량 위주로 출시되던 전기차 시장이 중저가형, 특히 가성비 높은 차량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여기에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잇따라 나오는 것도 시장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기아 EV9.(사진=기아)
 
5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6월 출시된 EV9의 올해 9월까지 판매량은 3685대에 그쳤습니다. 6월 665대, 7월 1682대에서 8월 551대, 9월 787대로 급감했습니다. 
 
지난 5월 국내 사전계약 당시 8영업일 만에 1만367대가 접수돼 역대 기아 역대 플래그십 모델 중 가장 높은 대수를 기록했지만 6월 출시 이후 실제 판매는 주춤한 상황입니다. 지난달 기준 EV9은 생산량이 많은 주력 사양에서 벌써 재고가 생겼습니다.
 
업계에선 EV9 가격이 동급 국산 내연기관차량 보다 높게 책정된 점이 저조한 판매의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EV9은 7337만원부터 시작하는데 상위 트림 '어스' 사륜구동에 일부 옵션을 더하면 9000만원을 훌쩍 넘습니다.
 
컨슈머인사이트는 EV9이 출시 후 구입의향 상승세가 2주 만에 꺾였다고 밝히며 "대형 차급인만큼 가격대가 높아 구매층이 얇고 전기차 보조금도 제한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지난달 21일 출시된 레이 EV는 사전계약 기간(20영업일)동안 6000대 이상이 접수됐습니다. 기아가 설정한 올해 판매목표 4000대를 50% 초과 달성한 수치입니다. 가격은 2735만~2955만원으로 보조금을 받을 경우 2000만원대 초반에 구입이 가능합니다. 또 경형 전기차로 분류돼 개별소비세·교육세·취득세가 면제됩니다.
 
EV9의 부진과 레이 EV의 흥행은 전기차 시장이 고급 대형에서 보급 중소형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데요.
 
기아 레이 EV.(사진=기아)
 
기아는 다음달 미국에서 EV9을 출시하는데 미국 판매가격을 국내와 비슷하게 책정한 만큼 현지 판매량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략도 달라질 전망입니다. EV9 판매가 저조할 경우 현대차가 내년 하반기 선보일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 7' 출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의 강점이 하이브리드차 대비 많이 약화되면서 가성비가 떨어진 전기차 구입이 떨어지고 있다"며 "앞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중저가의 가성비 높은 전기차 제작과 판매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저렴한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 경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는데요. LFP 배터리는 제조원가가 저렴하고 NCM 배터리와 비교해 안정성이 높지만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고 주행거리가 짧은 것이 한계로 지적돼왔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LFP 배터리 탑재를 늘리고 있습니다. 기술 개발로 LFP 배터리의 성능이 향상된 데다 비싼 NCM 배터리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큰 강점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인데요. 중국 BYD는 LFP의 에너지밀도를 개선한 '블레이드 배터리'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기아 EV5.(사진=기아)
 
가성비 개념이 전기차 시장에도 도입되면서 테슬라를 시작으로 폭스바겐, 현대차·기아는 물론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하는 메르세데스-벤츠, 볼보까지 LFP 배터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가격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2만5000달러, 한화로 약 3000만원대의 보급형 전기차도 조만간 내놓을 방침인데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20년부터 보급형 전기차인 '모델2(가칭)'를 내놓겠다고 공언해 왔습니다. 폭스바겐은 지난 3월 3000만원대 전기차 'ID.2all'을 공개했습니다. 2025년부터 양산할 예정입니다.
 
현대차그룹도 가격 경쟁에 가세합니다. 우선 기아는 오는 12일 준중형 전기 SUV EV5의 국내 출시 계획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중국에서 판매 중인 EV5 가격은 15만9800위안(약 2900만원)입니다. 내년부터는 3000만원대의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SUV) 'EV3(가칭)'를 양산할 예정입니다. 현대차는 내년 캐스퍼 EV를 선보입니다.
 
김 교수는 "전기차 가격에서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얼마큼 낮춰 주느냐, 또 필요 없는 옵션은 얼마큼 빼서 실질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보조금 없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언제 되느냐가 관건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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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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