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삼성과 현대차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의 첫발을 딛었습니다. 과거 삼성자동차 진출 후 소원해졌던 두 그룹 관계가 이재용-정의선 회장 대에 이르러 청산된 의미를 가집니다. 중국 배터리가 자국을 넘어 유럽시장을 넘보는 가운데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두고 양사가 실리를 우선시한 모습입니다.
삼성SDI는 23일 현대차와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앞서 2020년 5월13일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삼성SDI 공장에서 회동한 이후 실질 사업협력 소식은 뜸했으나 마침내 성사된 것입니다.
당시 두 회장의 만남은 재계에서 주목받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 삼성이 완성차 사업에 뛰어들어 사업 영역을 침범당한 현대차와 멀어졌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이례적이었습니다. 삼성이 외환위기로 완성차를 처분한 이후에도 재진출 가능성이 줄곧 거론돼 왔고, 이를 경계한 현대차는 줄곧 배터리와 차부품 등을 LG그룹에 의존해왔습니다. 그러다 2020년 회동 후 삼성전자와 현대차간 차량용 반도체칩 개발 협력 소식이 전해지며 물꼬를 튼 바 있습니다.
삼성SDI와 현대차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공급 계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삼성SDI는 현대차를 새로운 고객사로 확보하는 한편, 향후 협력 확대 기회를 열어 둠으로써 추가 성장동력을 확보하게 됐다고 자평했습니다.
이번 계약으로 삼성SDI는 현대차에 개발 중인 6세대 각형 배터리인 P6를 공급하게 됩니다. 각형 배터리는 국내 삼성SDI만 유일 양산해왔으며 SK온이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간 BMW에만 각형 배터리를 공급해왔는데 현대차를 포함해 각형 시장이 넓어집니다.
각형 배터리는 원형과 파우치형에 비해 외부충격에 강한 안전성이 강점입니다. 안전성이 높으면 급속충전에도 유리합니다. 최근 중국 BYD가 자체 배터리의 급속충전 속도로 시장을 놀래킨 바 있어 배터리 서열 경쟁이 난맥상입니다. 현대차로선 기존 LG, SK를 넘어 삼성을 배터리 공급망에 포함시킴으로써 이런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각형 배터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적합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 회동에서도 전고체 배터리 기술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번 공급계약은 양사간 전고체 배터리 협력까지 이어질 개연성을 제공합니다.
P6 각형 배터리는 2026년부터 7년간 현대차에 공급됩니다. 삼성SDI의 헝가리 공장에서 생산돼 현대차의 차세대 유럽향 전기차에 탑재됩니다. 유럽은 전기차 및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과의 격전지가 될 전망입니다. IRA 등으로 미국 진출이 막힌 중국이 유럽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어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날 공급계약에 대해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는 현대자동차와의 전략적 협력의 첫 발"이라며 "삼성SDI만의 초격차 기술경쟁력, 최고의 품질로 장기적인 협력 확대를 통해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