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2년 만에 솜방망이로 전락했습니다. 기업의 안전 조치를 강화해 산업재해를 줄이고,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벌하도록 했지만, 2년 동안 실제 처벌 사례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자 50명 미만인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 공사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키로 했으나 경영계의 반대로 좌초될 처지입니다.
'죽음의 외주화' 막자며 만든 중대재해처벌법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 노동자가 일하다가 사망한 경우 원청기업의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입니다. 그동안 원청은 비용절감을 위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에 떠넘기다가, 막상 하청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모른 척 책임지지 않는 죽음의 외주화가 만연했습니다. 실제 2016년 5월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군',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을 하다 숨진 김용균씨는 모두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정치권과 노동계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강화된 법으로 만들어진 게 중대재해처벌법입니다. 고 김용균씨 사건은 죽음의 외주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겨나는 직접적 계기가 됐습니다.
산업안전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비교. (이미지=뉴스토마토)
중대재해처벌법은 기본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강화됐습니다. 의무사항의 경우 산업안전보법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를 했는지에 국한됩니다.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에선 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의 의무가 강조됐습니다.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했는지, 산재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했는지, 중앙행정기관의 시정사항 등을 이행했는지, 안전보건 관계법의 의무이행 사항을 조치했는지 등을 따지는 겁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에선 도급·용역·위탁 관계에서의 제3의 종사자에 대한 의무까지 규정했습니다.
처벌도 높아졌습니다. 사망 사고가 생기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자연인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법인은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자연인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법인의 경우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립니다.
'솜방망이 처벌'…재판 넘겨진 기업, '위헌' 주장까지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솜방망이로 전락, 법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습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모두 28건입니다. 이 중 재판에 넘겨져 1심 판결이 나온 건 8건, 그 중 실형은 단 1건(한국제강 대표이사, 징역 1년 선고에 법정구속)에 그쳤습니다. 7건은 집행유예였습니다.
심지어 집행유예를 받은 일부 사업주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까지 제기했습니다. 두성산업과 삼표그룹입니다. 에어컨부품 제조회사인 두성산업은 지난해 2월 독성물질이 함유된 세척제에 노동자 16명이 급성중독을 일으킨 사건과 관련해 그해 6월 대표이사가 기소됐고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두성산업은 넉 달 뒤인 그해 10월 창원지방법원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한 겁니다.
2022년 2월18일 노동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 관계자들이 급성중독으로 인한 직업성 질병자 16명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경남 창원시 의창구 두성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헌법재판소법 제42조(재판의 정지 등)에 따르면, 법원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받아들여져 헌법재판소로 제청이 넘어가면 당해 소송사건의 재판은 위헌 여부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지됩니다. 두성산업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은 지난 3일 법원으로부터 기각됐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제기된 여러 문제는 입법 정책의 문제이지 헌법을 위반한 건 아니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두성산업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320시간을 선고했습니다. 두성산업 법인에게도 벌금 2000만원을 부과했습니다.
삼표그룹은 지난해 1월 경기도 양주시 소재 채석장에서 붕괴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사망하자 검찰로부터 기소됐습니다. 안전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겁니다. 그러자 삼표그룹 변호인단은 지난달 24일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입법 당시에도 위헌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있었다"며 "여전히 헌법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의사를 드러낸 겁니다. 이에 대해 삼표그룹 측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변호인단의 의견은 그렇지만, 그룹으로선 사법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말씀 말고는 더 드릴 게 없다"고 했습니다.
2022년 1월29일 경기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석재채취장에서 발생한 토사 붕괴사고 현장에 소방과 경찰 등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정치권도 뒷전…소규모 사업장 '법 시행' 2년 더 유예?
정부와 정치권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3년 유예한 것도 모자라, 2년을 더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당초 정부와 정치권은 상시 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 공사 등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3년이 지난 2024년 1월27일부터 적용키로 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은 제반여건 준비가 필요하다는 경영계 의견을 수용한 겁니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은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026년까지 2년 더 추가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제1 야당인 민주당도 중대재해처벌법 2년 추가 유예를 적극적으로 막아서기보다, 전세사기특별법 등 다른 민생법안 관철을 위한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배경엔 경영계의 읍소와 로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경제인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지난 10월18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50인 미만 소규모 기업은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준비가 미흡한 상황으로, 사고 발생시 사업주는 엄한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려워 해당 기업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50인 미만 사업장이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법 적용 시기를 2년 더 유예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산재 사망자 대다수가 소규모 사업장에서 생긴다는 겁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자 80.9%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자 874명 중 80.9%(707명)가 50인 미만 사업장 소속이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026년까지 유예되면 소규모 사업장에선 사람이 죽어도 사업주를 벌할 수 없게 됩니다.
민주노총이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중단 촉구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경영계 로비로 법 유명무실…노동자 죽음보다 기업이 먼저냐?"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기는 했지만, 정부와 정치권, 사법부 모두 법을 엄격히 적용할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이 솜방망이로 전락, 산재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는 "경영계가 이익단체 등을 통해 로비를 했기 때문에 법이 유명무실해졌다"라면서 "강력한 처벌을 통해 기업이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한 법 취지를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임수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역시 "경영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줄기차게 피력했다"면서 "재계 눈치보기가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고, 기업 부담을 덜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입장을 피력했다"면서 "윤석열정부의 기본 기조도 친기업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강력하게 적용할 리 없고 검찰도 당연히 그런 걸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차헌호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공동소집권자(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지회장)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겼지만 기소율도 떨어지고 면죄부를 줘서 처벌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라면서 "사법부 역시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것보다는 기업을 먼저 고려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진 게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최병호·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