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민우 기자] # 대형병원에서 '인공관절 치환술' 수술 날짜를 잡은 80대 A씨. 평소 심장이 안 좋아 2차 병원 심전도 검사에서 매번 퇴짜를 맞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B씨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의과대학 증원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의 갈등으로 '의사 총파업'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B씨는 "어머니가 치매까지 앓고 있어 대학병원 수술 밖에는 방도가 없는데, 날짜를 잡았어도 하루하루가 불안한 상황"이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사히 수술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습니다.
# 작년부터 허리디스크가 심해진 직장인 C씨는 얼마 전까지 대형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수술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척추·관절 전문병원(척관)에서 받기로 했습니다. C씨는 '양방향 척추 내시경술' 날짜를 받았지만 '전공의 단체행동' 소식에 불안감을 토로했습니다. C씨는 "전공의들이 파업한다는 뉴스를 보고 파업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지역 척관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며 "자주 하는 수술이라고는 하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다. 선택의 폭이 줄어든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총 26차례 가량 대한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를 열었지만 구체적인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공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부터 의대 증원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돌입했지만 반년 가까이 답보 상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27차 의정협의체 여부에 따라 의료계 집단행동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31일 제27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료계와 의사인력 확충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사진은 의대증원 반대 시위하는 대한의사협회 모습. (사진=뉴시스)
증원규모 '초읽기'…의료계 파업 '촉각'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31일 제27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료계와 의사인력 확충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정부가 내달 설 연휴를 전후로 의대 정원에 대한 증원 규모 발표를 계획 중인 것을 고려하면, 27차 의정협의체가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복지부는 내달 1일 의료수가 차등적용을 골자로 하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의대 증원 수는 담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설 전 발표를 할 경우 연휴기간 의료 대응 체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 조처로 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규모 발표는 설 직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많게는 2000명 수준의 의대 증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에 의료계는 연일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21일 55개 수련병원 4200명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6%가 의대 증원 강행 시 집단행동 의사를 보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공의가 의대 증원 추진에 반대하며 파업 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집단파업 땐 면허 취소 '만지작'
대형 병원의 궂은일을 도 맡아 하는 전공의들의 파업은 의료현장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때문에 전공의 파업은 의료계에서 가장 높은 수위의 집단행동으로 평가됩니다. 대한외과의사회가 27일 '대전협의 단체행동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며 전공의 파업에 힘을 실은 배경입니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전공의 파업에 의대 증원이 무산된 바 있습니다.
이번 정부는 의료계가 '총파업'에 나설 경우 강력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대응안으로는 '파업 시 면허취소'까지 거론됩니다.
앞서 지난해 11월 의사가 법을 지키지 않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되도록 의료법이 개정된 바 있습니다. 복지부 장관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은 의료인 파업으로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하면 의료법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습니다. 집단행동 참가로 의사가 실형을 받을 경우 면허 취소 처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31일 제27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료계와 의사인력 확충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사진은 의대증원 반대 시위 모습. (사진=뉴시스)
"전공의 파업, 명분 부족"
개별 의사 단체가 아닌 병원단체는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분위기로 돌아선 모습입니다. 대한병원협회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증원 전 충족해야 할 조건들을 언급하면서도 "의사 인력 확충과 지원방안 등 정책의 방향성에는 공감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대한중소병원협회의 경우도 찬성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의대 증원의 경우 그동안 늘리지 못한 정원을 충분히 늘린 뒤 조절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에서 주장한 350명은 턱없이 부족한 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공의 집단행동의 경우 코로나19 당시처럼 위기상황을 직면한 상태도 아니기 때문에 명분이 부족하다"며 "가능성이 낮은 얘기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9.3%가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의대 증원에 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31일 제27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료계와 의사인력 확충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사진은 의대정원 확대 외치는 보건의료노조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이민우 기자 lmw383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