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사법농단' 핵심 피의자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법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시민사회의 반발이 커지고 있습니다. 무려 47개에 달하는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한 법원에 대해서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직권남용 부정, 정의에 반하는 판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9일 논평을 내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중대하게 훼손한 사법농단 사건의 책임 법관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라며 "사법농단 사건의 재발 방지는커녕 범죄행위를 벌할 수 없다고 선언한 법원의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민변은 양 전 대법관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던 '직권남용죄'가 인정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대법원은 수사 및 감사 등에 지시하거나 관여한 고위 공무원에게 '일반적 직무권한'을 인정해 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개입한 고위 법관들에게만 유독 이를 인정하지 않는 해석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민변은 "법관 사찰, 블랙리스트 관리, 헌법재판소 재판 관여, 연구회 와해 시도, 재판거래 정황 등 나머지 범죄혐의에 대해 일반적 직무권한을 인정하면서도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부정했다"며 "사법농단이 실재했음에도 범죄성립을 인정하지 않은 1심 판단은 구체적 정의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 식구 감싸기…사법 역사 수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도 논평을 통해 "무슨 범죄를 저질러도 법관은 무죄인 '법관무죄' 시대"라며 "법관의 인사권을 독점했던 양 전 대법원장이 개별 법관들을 사찰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는데도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은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판결의 최정점으로 사법 역사에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참여연대는 이날로부터 정확히 6년 전인 2018년 1월29일 양 전 대법원장,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직권남용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이들의 혐의가 정상적인 업무를 벗어나 의무없는 일을 강요하고, 피해를 입은 법관들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형법 123조(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사법농단 수사에 특수부 검사를 대거 투입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3차장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수사팀장을 맡았습니다. 수사 실무는 특수1부장이었던 신자용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보다 앞서 판결을 받았던 이 전 기조실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 2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현재는 3심이 진행 중입니다.
14명 중 11명이 무죄…검찰, 항소 검토
이로써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 가운데 1·2심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피의자는 11명입니다. 문재인정부 당시 사법 적폐 기조로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르면서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 피의자'인 임 전 차장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달 5일 예정됐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임 전 차장을 '사법행정권 남용 총 책임자'로 지목해 징역 7년을 구형했습니다.
검찰은 양 전 대법관에 대한 1심 판결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