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쟁점 '직권남용', 왜 인정 안됐나

재판부 “직무상 권한 없으니 남용할 게 없어”
대법원장 권한 좁게 해석했다는 비판 제기돼

입력 : 2024-01-29 오후 1:36:40
 
 
[뉴스토마토 유연석 기자]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서 가장 큰 쟁점은 핵심 혐의 중 하나인 ‘직권남용죄의 인정 여부’였습니다. 법원은 직권남용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직무상 권한이 없어 남용할 게 없다는 논리입니다.
 
재판부 “직무상 권한 없으니, 남용할 수도 없다”
 
29일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모두 47개. 이 중 41개가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기소 단계에서부터 직권남용 혐의의 인정 여부가 재판의 핵심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왔습니다.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 성립합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의 대부분 혐의에서 직권남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직권남용을 판단하기 위해 총 4가지로 쪼개 살폈습니다. △일반적 직무권한에 해당하는지 △직권이 있다면 남용했는지 △권한을 남용했다면 타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는지 등을 봤습니다. 그리고 나서 최종적으로 △공모했는지를 봤습니다.
 
(이미지=뉴스토마토)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사건의 주심 대법관에게 행정처 입장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고, 설령 직권을 행사했다고 보더라도 이를 남용했다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려면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대법원장을 비롯해 어떤 판사도 그런 권한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직권이 있고, 아울러 권한을 남용한 혐의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단도 있었습니다.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를 빼온 행위와 특정 법관 모임을 와해시키려 한 행위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공모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기에 무죄라고 봤습니다. 
 
이밖에 판사의 비위를 은폐하기 위해 관련 재판 선고를 늦춰달라는 청탁은 부적절했지만, 요청에 그쳤다는 점에서 유죄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고위 법관들에게만 ‘일반적 직무권한’ 인정하지 않는 해석”
 
이같은 법원의 판단을 두고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장의 권한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서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 등 주요 핵심 피고인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광범위하게 적용하고도, 사법부에 대해서만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겁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29일 논평을 통해 “재판개입은 헌법에 의해 직접 보장되는 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재판에 개입하는 유무형의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며 “재판에 개입한 고위 법관들에게만 유독 ‘일반적 직무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해석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공동취재)
 
유연석 기자 ccb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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