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롯데케미칼이 회사채 보증을 통해 롯데건설을 지원한 것이 법을 우회한 편법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사실상 채무보증 효과를 얻지만 공정거래법상 채무보증 제한 규정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감독당국의 판단으로, 대규모 기업집단 내 유사 사례가 늘어날 우려를 낳습니다.
상출제 채무보증제한 무용지물?
1일 공정위 및 재계 등에 따르면 태영 사태 후 우발채 부담으로 금융조달의 어려움을 겪던 롯데건설이 롯데케미칼의 신용 지원을 받았습니다. 롯데건설이 발행하는 회사채에 대해 롯데케미칼이 지급보증하고 나선 것입니다. 덕분에 롯데건설의 1년물 2000억원 회사채는 수요예측에서 3440억원 주문을 받아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롯데건설 신용등급은 A+(부정적)이지만 롯데케미칼 지급보증 덕분에 AA(안정적) 등급을 부여받은 효과입니다.
본래 롯데그룹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라 공정거래법 제24조에 의해 계열사간 채무보증이 금지됩니다. 이와 관련 롯데건설 측은 이번 회사채 보증에 대해 “직접 대여를 해주는 게 아니어서 상호출자제한집단 규정과 관련이 없다”며 “저희한테 지급보증하는 형식이 아니고, 신용공여를 해주는 것이라 상호출자제한법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이 투자자들에게 안내한 공시를 보면, 롯데케미칼이 사채의 원리금 지급을 보증하고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또 원리금에 대한 보증 내역으로 사채의 원금상환과 이자지급(연체이자 포함) 등 일체의 지급의무에 대해 지급보증인인 롯데케미칼이 보증한다고 구체화 했습니다.
이에 대해 감독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는 금융기관 여신만 관련 규정에서 제한하는 것이란 법리해석을 내놨습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채무보증에 해당이 안 된다”며 “공정거래법상 채무보증이라하면, 국내 금융기관의 여신관련 보증만 금지돼 있는 것으로 (이번은)회사채를 발행해 지급보증한 것이라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회사채 보증은 규정 대상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법상 규제 취지를 고려하면, 채무보증과 같은 효과를 얻는 회사채 보증은 규정을 우회한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이는 상호출자제한집단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마련된 채무보증제한 규정 취지를 훼손했다는 시각입니다. 이번 롯데 사례를 기점으로 다른 기업집단 내 유사 사례가 늘어날 것에 대한 우려도 번집니다. 비우량 계열사에 대해 우량 계열사가 회사채 보증을 서 기업집단만의 금융조달이 유리해지는 경제력 집중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며 “법이 현실을 못 따라 가면 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게 규제당국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습니다.
"보증 좁게 해석, 법 사각지대 형성"
법 제24조(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 금지)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국내 회사(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회사는 제외)는 채무보증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또 조세특례법상 인수 회사의 채무보증이나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한 해외 건설, 수출선박 건조, 용역수출, 신기술 개발을 위한 시설 및 기자재 구입 등 여러 예외도 뒀습니다. 하지만 회사채 보증 하나면 이들 규정은 모두 무력화 될 수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집단 내 가장 신용이 좋은 회사는 보통 지주회사”라며 “계열사간 회사채 보증이 허용되면 모든 회사채가 신용이 가장 좋은 계열사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근래 총수익스와프(TRS)도 비슷한 편법이란 논란이 일었습니다. TRS는 거래당사자가 계약기간 내 기초자산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총수익을 상호 교환하는 파생상품입니다. TRS를 통해 계열사간 채무보증 효과를 얻으면서도 규제받지 않고 관련 사례가 급증하자 공정위가 실태조사에 나선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또한 공정위가 탈법행위가 아니라고 해석하면서 논란이 식지 않습니다.
공정위는 TRS에 대해서도 롯데처럼 “채권 인수 주체인 SPC가 금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채무보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금융기관이 직접 기초자산 채권을 인수한 경우에도 “계열사간 보증계약이 아닌 TRS 계약이기 때문에 보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이에 대해 앞서 경제개혁연대는 “공정위는 사실상 채무보증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 오더라도 형식적으로 계열회사가 직접 보증한 것이 아니라면 채무보증제한 대상이 아니라고 해석했다”며 “이는 공정위가 보증의 개념을 좁게 해석함으로써 스스로 규제 사각지대를 형성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공정위 해석은 파생상품을 이용해 채무보증제한제도를 회피하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격”이라며 “현행 탈법행위 규율 등을 적극 활용해 편법적 채무보증 행위에 엄정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