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해협·남중국해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가운데 중국의 직접적인 반발은 물론 미국 내에서의 '한국 개입' 목소리가 빈번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대만 유사 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찰스 플린 미 태평양육군사령관에게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이 다른 동맹 보호에도 함께 해주길"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 육군을 총괄하는 찰스 플린 사령관은 최근 한국 언론 인터뷰에서 대만 유사 시, 즉 중국의 대만 침공 때 한국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한국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한국군이 한국뿐 아니라 다른 동맹을 보호하는 데에도 함께 해주면 기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군을 보는 것 자체가 동맹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라며 "중국의 무책임하고 교활한 행동에 맞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플린 사령관은 미 육군 인도·태평양 지역 최고위급 지휘관인데, 한국군 참여 여부를 직접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플린 사령관은 또 미군의 중거리 미사일이 곧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태지역 내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미국의 중국 견제 의도가 담긴 것입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지난해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해 발표한 '다음 전쟁의 첫 전투'라는 보고서에도 주한미군 4개 전투비행대대 중 2개 대대가 차출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특히 오산·군산 공군 기지와 제주 해군기지 활용 가능성도 거론됐습니다.
존 애퀼리노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중국은 경제성장 둔화 속에서도 포괄적인 군 현대화 작업을 계속 시행하고 있다"며 "모든 징후는 중국이 2027년까지 대만을 침공할 준비를 하라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를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산하 인도·태평양소위 위원장인 공화당 소속 한국계 영 김 하원의원은 지난달 워싱턴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대담에서 "대만해협 유사시 (한국은) 미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수영 녹색정의당 선임 대변인은 "찰스 플린 사령관은 한미동맹의 목적을 평화와 대북억지력 유지가 아닌 대중국 견제로 바꾸려는 미국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반복적으로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하는 등,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하면서 맹목적인 미국 추종 외교를 펼치는 윤 대통령의 행보가 미국의 기대감을 키워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디펜스(Vigilant Defence)'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30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F-35B 전투기가 착륙하고 있다. (사진=뉴시)
"대만 침공 '불확실한 미래'…대중 협력이 우선"
우리 정부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파병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미국이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여단급 부대를 파병할 것을 우리 정부에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의 역할과 임무는 우리 군과 함께 강력한 연합방위태세를 구축한 가운데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06년 1월에는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해당 내용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한국군의 직·간접적인 대만 지원에 따른 한·중 관계 여파입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뉴스토마토>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는 것처럼 대만 전쟁 역시 같은 양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그 피해는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지원을 하게 되는 한국이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 초빙교수는 "만약 한국 내 주둔하는 병력이 대만으로 빠지게 되면 한반도에 '힘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이 이 상황을 틈타 국지전을 벌여 올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은 북한을 통해 주한미군의 발을 묶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대만 유사시 오산·군산 공군 기지와 제주 해군기지 활용에 대해서도 "우리가 후방 지원을 하게 되면 한·중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다만 그는 "중국의 대만 침공은 아직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고 할 수 없다"며 "장기적 리스크를 전망할 게 아니라 단기·중기적으로 중국과 협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대만 유사시 관련 미·중의 전략과 쟁점' 보고서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북핵 위협을 한미동맹으로 억제해야 하는 현실에서, 그리고 중국의 부상이라는 동아시아 세력 재편의 와중에서 우리 외교의 기본적 방향성을 친서방으로 설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중국을 봉쇄하거나 부상을 억제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보험 차원에서 '연성 균형'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