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올 1분기 현금을 쌓아두려는 상장기업의 유상증자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유증 수요 확대로 일부 기업들은 유증 성공을 위한 비용 부담도 감내하는 모습입니다. 과거 코스닥 기업들이 주로 활용했던 사모 전환사채(CB)의 발행 제도가 바뀌고, 공매도 금지로 글로벌 헤지펀드들의 교환사채(EB) 수요마저 감소하면서 기관 자금 유치가 어려워진 영향입니다.
증시 호조에 유증 수요 증가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상장기업들의 유증 규모는 3조5440억원으로 전년 동기 2조2456억원 대비 57.8% 증가했습니다. 올해 초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으로 주식시장이 호조를 보이자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선 것으로 해석됩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 지연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수요가 늘었고 유증을 통한 자금 조달도 늘어난 모습”이라며 “올해 초 주가가 상승하면서 기업들 역시 선제적으로 신주 발행을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들의 유증 수요가 늘면서 유증 비용도 예전보다 늘어난 것으로 파악됩니다. 통상 기업들은 유증을 진행할 때 주관사와 잔액인수 계약을 체결합니다. 유증이 실패할 경우 주관사가 실권주를 인수해 주는 계약으로 발행사는 자금 조달 실패 위험을 낮출 수 있습니다.
발행사와 주관사가 잔액인수 계약을 체결할 경우 증권사 입장에선 영업용 순자본 비율이 낮아지고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 리스크도 떠안아야 합니다. 그 때문에 증권사들은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실권주 인수 확약 시 잔액인수 수수료를 설정합니다. 주관사의 위험 부담을 감안해 실권주 인수금액에 일정 수준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식입니다. 통상 수수료율은 10% 이내에서 결정되지만, 기업에 따라 인수수수료율이 20%까지 치솟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잔액인수 방식으로 공모 유증을 진행한 기업 19곳의 실권주 인수수수료는 평균 10.8%였습니다. 올해 실권주 잔액인수 방식으로 공모 유증을 진행했거나 추진 중(증권신고서 제출 기준)인 18개 기업의 평균 실권수수료율은 11.8%로 1%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실권주 인수수수료가 없는
LG디스플레이(034220),
일진전기(103590),
대한전선(001440)을 제외할 경우 평균 수수료율은 14.2%까지 높아집니다.
수수료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삼보산업(009620)으로 20%를 적용받았습니다. 유증 대표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은 삼보산업의 유증 기본 인수수수료로 2억5000만원의 대가를 받기로 했으며, 실권주에는 인수금액의 20%를 수수료로 정했습니다.
실권 수수료율, 리스크에 비례…'오버행' 우려도
실권주 수수료율이 높다는 것은 주관사가 해당 기업의 리스크를 그만큼 높게 평가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잔액인수 수수료율이 높을수록 증권사는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가가 1만원인 기업이 25% 할인가로 유증을 진행하는 경우, 20%의 잔액인수 수수료가 붙는다면 증권사 입장에선 현재가 1만원의 40%인 6000원(7500원에서 20% 할인)까지 하락해도 손실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해
미코바이오메드(214610) 유증을 주관하면서 대량의 실권주를 떠안았던 KB증권의 경우 실권수수료 덕분에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11월 KB증권은 미코바이오메드의 유증 실패로 나온 실권주를 인수하며 15.9%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KB증권은 이후 메리다신기술조합, 톨라나로조합에 보유 지분을 모두 장외매도했습니다. 처분단가는 주당 1940원으로 유증 발행가 2705원보다 28%나 낮지만, 실권주 수수료 덕분에 손실을 면했습니다. KB증권은 실권주 인수수수료율 15%와 별도로 1주당 0.2주의 무상증자까지 받으며 주당 인수가격을 1916원 수준까지 낮출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잔액인수 실권수수료율이 높을 경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앞선 업계 관계자는 “잔액인수 수수료율이 높은 경우 유증 주관사가 해당 기업의 리스크를 그만큼 높게 본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주관사들은 일반 투자자들보다 저렴하게 신주를 인수하게 되는 만큼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우려도 커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실권주 물량이 5%를 넘어설 경우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라 해당 지분을 더 빠르게 매각할 수 있다”면서 “매각이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로 이뤄지더라도 결국엔 시장에 풀리게 될 물량”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