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의대 증원, 지방대 속내는 ‘환영’

국립대 50%·사립대 100% 반영 추세
내년도 증원 규모 1400~1500명선

입력 : 2024-04-26 오후 5:06:27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정부의 대규모 의대증원으로 의정갈등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생존 위기에 내몰린 지방대학들은 이번 의대증원이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의대 입학을 위한 전국의 인재들이 모여들면서 지역이 활성화되고, 지방 소멸위기 탈풀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의정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의대 구성원의 내부 반발과 의료교육 부실 문제는 해결과제로 꼽힙니다.
 
26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의 의대 증원을 배정받은 32개 대학 중에서 증원 반영 방침을 밝힌 대학은 모두 14곳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원대, 경북대, 경상국립대, 충남대, 충북대, 제주대 등 국립대학 6곳과 가천대, 동국대 분교, 계명대, 영남대, 대구가톨릭대, 인제대, 동아대, 조선대 등 사립대학 8곳입니다. 이들은 학칙 관련 내용을 논의하는 심의기구를 거쳐 학칙 개정을 조만간 마무리한다는 계획입니다.
 
 
나머지 18개 대학은 증원 반영 비율을 놓고 논의 중에 있습니다. 현재까지 국립대들은 정부 증원분의 50%, 사립대들은 100%를 반영하는 추세입니다. 의대를 운영하는 국립대 총장들은 지난 18일 증원된 의대정원의 50~100%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모집하도록 허용할 것으로 정부에 건의했고, 정부도 이를 수용한 바 있습니다.
 
‘국립대 50%·사립대 100%’ 비율이 유지되면 당초 발표한 의대 증원 2000명에서 1597명이 됩니다. 울산대 등 몇몇 사립대는 증원분 감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내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1400~1500명선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방 사립대 관계자는 “국립대는 처음에 상대적으로 많은 정원을 배정받았고 의대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로 학사일정 우려가 커서 절반 수준에서 증원하는 것 같다”며 “사립대도 의대 반발은 똑같지만 대체로 정부 증원 배정을 따르지 않을까 한다”고 내다봤습니다.
 
다른 대학 관계자는 “지방 대학은 인구 감소와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생존 위기에 내몰린 지 오래”라며 “이번 의대 증원으로 학교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의대 규모와 수준에 따라 그 대학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며 “지금 증원에 참여하지 않으면 대학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의과대학 운영 대학 총장과 영상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만 의정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고 의대 구성원들의 반발이 거세 입학정원을 확정하기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입니다. 아직 절반 이상의 대학들이 의대정원을 결정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각 대학은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제출하도록 돼 있습니다. 대교협은 통상 4월 말까지 대학별 시행계획을 받아왔지만, 올해는 예외적으로 5월 중순까지 제출기한을 허용한다는 방침입니다.
 
한 대학 기획처 관계자는 “증원 규모를 줄인다고 해도 의대 교수들과 협의해야 한다. 현재 휴학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학사일정 유지를 위해서도 의대 교수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대학 본부의 입장과 의과대학 구성원들의 입장이 달라 쉽게 정원을 결정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실제 의대 학장부터 교수와 학생까지 의대 측 구성원들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며 강경한 입장입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21일 전국 학장·학원장 회의를 통해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동결한 이후 협의체를 통해서 향후 의료인력 수급을 결정하자”고 대정부 호소문을 냈습니다.
 
의대 구성원 반발 ‘여전’
 
의대 교수들이 집단사직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충북대·강원대·제주대 등 10개 대학 의대생들은 22일 대학 총장을 상대로 ‘대입전형 시행 계획 변경금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습니다. 지난 20일까지 교육부가 집계한 의대생 휴학 신청 건수는 전국 의대생의 56.6%인 1만626건입니다.
 
갑작스런 증원으로 의대교육 부실화 우려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앞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은 “정부가 의과대학의 교육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증원과 배분안을 발표했다”며 “우리 의학교육을 퇴보시킬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의평원은 의대 교육과정을 평가·인증하는 기관입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의평원도 의료계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이라고 봐야 한다”며 “의평원이 하는 의과대학 인증평가는 보건복지부에서 위임 받은 건데, 인증평가를 안 해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그러면 복지부가 의평원 대신 인증평가를 하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 입장에서 당연히 학생이 많은 게 좋다. 서울대 의대가 130명이 좀 넘는데, 다른 의대들도 학생들이 적으니 기초의학 과목을 개설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현실”이라며 “의사 정원을 늘리는 건 의사나 의사가 될 사람을 빼면 모두 찬성”이라며 “의사를 늘리는 건 당연한 거고, 어떻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지역의료 공백을 막을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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