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대통령실 비선과 사조직 하나회

입력 : 2024-05-03 오전 6:00:00
1979년 10월26일, 장기 집권을 꿈꿨던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정국 혼란과 북한의 혹시 모를 남침을 방지하고자 최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권한대행 권한으로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계엄사령관은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맡았습니다. 하지만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12월12일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정 총장을 납치하고 수도권 일대 군부대를 불법으로 동원, 대통령권한대행과 국방부장관 등을 협박한 뒤 정권을 찬탈합니다. 바로 12·12 군사반란입니다.
 
지난해 말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되면서 현대사의 어두웠던 단면이 재조명됐습니다. 영화에서 반란을 막고자 분투한 이태신 장군은 실존 인물인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모델로 합니다. 반란은 장 사령관이 수경사령부 지휘관으로 부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났습니다. 부하인 장세동 30경비단장, 김진영 33경비단장, 조홍 헌병단장, 신윤희 헌병단 부단장 등이 반란군에 가담·동조한 탓에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한 채 제압당해야 했습니다. 장 사령관은 이후 <12·12 쿠데타와 나>라는 책을 썼습니다. 군사반란의 실체를 밝히고, 반란을 막았어야 할 진압군은 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울분을 토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책의 상당 분량을 할애해 군 사조직인 하나회에 대해 설명했다는 점입니다. 하나회를 방치한 게 사태의 원흉이라고 본 겁니다. 장 사령관은 하나회를 아예 '비극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국가에 충성하고 헌법을 수호하며 시민을 지켜야 할 군에 전두환을 옹위하는 사조직이 암약한 것, 전두환의 권력욕과 개개인의 영달만 생각한 하나회야 말로 현대사 비극이 시작된 뿌리라는 겁니다. 
 
용산 대통령실이 오버랩된 건 우연일까요. 하필 책을 읽던 중,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의 인선을 놓고 이른바 '용산 3간신' 소문이 나온 터였습니다. 사조직인 하나회가 군에서 암약한 것처럼, 용산 대통령실에도 비선과 사조직이 들끓고 있다는 건 정치권에선 공공연한 정설입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무속인 천공의 국정개입 의혹, 민간인 비선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논란, 김건희씨의 사적 라인, 윤석열사단과 검찰·법조 출신의 행정부 및 기관 장악 등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특히 비선 논란은 국가의 정상적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세력이 암약한다는 방증입니다. 3간신 소문 역시 연장선에 있습니다. 
 
물론 윤 대통령 주변의 비선들이 하나회와 판박인 건 아닙니다. 조직적으로 뭉쳐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를 전복할 물리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권력만 추종하고, 공익 대신 사익을 추구하며, 국가의 정상적 시스템을 무력화해 거대한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점에서는 하나회처럼 비극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당이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에서 '역대급'으로 참패한 상황임에도 국정을 농단하는 간신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걸 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할 뿐입니다. 현 정부는 왜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걸까요. 불과 8년 전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을 초래한 최순실 국정농단 역시 비선들의 암약이 직접적인 단초가 됐습니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재발되면 안 됩니다. 윤 대통령은 비선을 척격할 단호한 의지, 쇄신에 대한 철학을 갖고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정부가 남아 있는 임기 3년을 정상적으로 보장받을 확률이 그나마 더 높아질 겁니다. 
 
최병호 탐사보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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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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