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잇따른 '전세사기'…박상우 "특별법 개정안 반대"

전세 보증 사고 2.5만…피해 인정은 1.5만뿐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고의성 등 입증해야
피해자들, 14일부터 대통령실 앞 집회 예정
박상우 "LH가 경매 참여하는 방안 검토할 것"
28일 법안…박 장관 "저로선 수용하기 어렵다"

입력 : 2024-05-13 오후 6:25:52
[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저는 국민도 아닙니까? 힘없으면 죽어 나가야만 하나요? 저도 잘 살고 싶었습니다."
 
지난 1일 전세 사기로 세상을 떠난 해자가 남긴 유서 내용입니다. 대구에서 피해를 입은 그는 전세보증금 8400만원을 못 돌려받아 자녀와 남편을 두고 자살했습니다. 지금까지 전세사기 피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은 총 8명입니다.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 방안의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국회가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전세사기 특별법은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국회에 반년 가까이 계류 중입니다. 다른 대책이라도 내놔야 하는데 "법리적으로 모호하다" "재정이 부족하다" "보이스피싱 등 다른 사기와 형평성에서 어긋난다" 등의 이유만 내세우고 있습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 구제 후 구상' 방안의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처리를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관련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주택도시기금에서 1조원 이상의 손실이 날 것이라고 표명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14일부터 대통령실 앞 집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이들은 1만5433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내년 5월까지 3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피해자 인정은 전체 사고에 비해선 턱없이 모자란 수준입니다. 올해 1분기(1~3월)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 보증 사고 건수는 2만5943건입니다. 주택금융공사(HF)와 SGI서울보증보험 보증 사고 건수까지 더하면 사고 건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됩니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대책으로 내놓은 '협의매수' 신청도 지난 3월 11일부터 지난달 5일까지 한 달 동안 실제 매입 요청까지 이뤄진 것은 2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협의매수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기 전 LH가 감정가로 먼저 사주는 방식인데 임차인이 선순위 채권자여야 하고, 경·공매가 진행 중이거나 압류가 하나라도 걸려선 안 된다는 등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 탓에 신청 건수가 예상치를 밑돈 겁니다. 특히 매입 요청 주체가 보증금을 떼먹은 임대인이라 연락 자체가 힘든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증받기 위해선 '단순 보증금 미반환' 사건과는 달리 다수 피해자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것과 고의성이 입증돼야 합니다.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추경호 신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면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 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 위원회는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의힘 중앙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당 관계자에게 추 원내대표와의 면담 요청서를 전달했습니다. 오는 14일부터는 서울역부터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까지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특별법 개정 촉구 집회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들이 추 원내대표 면담을 요청한 이유는 현재 정부와 여당 반대로 '선구제 후회수' 방안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1년 가까이 국회에 묶인 상태입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 대책 위원회 등이 13일 대구시청 동인 청사 앞에서 대구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지=뉴시스)
 
박상우 국토부 장관 "현행법 충분"…선그어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날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책을 다각도로 준비 중"이라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 주택 사업자가 경매에 적극 참여해 피해가 발생한 집을 낙찰받아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세입자에게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러한 방법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며 "야당이 제출한 전세사기 특별법은 최근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현실적으로 집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야당 안의 문제점으로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지목했습니다.
 
박 장관은 "야당이 낸 안을 보면 국민주택기금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건데, 이는 청약 통장 재원으로 언젠가 돌려줘야 할 자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무주택 서민이 낸 세금으로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하면 그 부담은 오롯이 다른 국민에게 다시 돌아간다"며 "주택도시기금 담당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동의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아울러 '채권 가치 평가가 어렵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박 장관은 "채권 가격은 굉장히 유동적"이라며 "조세채권이나 이런 것을 얼마짜리 채권인지 빠른 시간 내에 확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가격이 불확실한 상황에 정부 부처가 나서서 경매 과정도 거치지 않고 채권 가격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이라는 문제 제기입니다.
 
박상우 장관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국민들은 야당이 낸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선 구제 후 회수'라는 것만 알지, 청약통장을 갖고 있는 대다수는 법안 내용을 모른다"며 "21대 국회 종료 전 급속도로 진행하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도리인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야당인 민주당은 28일 공공이 임차인 보증금 반환 채권을 우선 매입해 보상한 다음 구상권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선구제 후회수' 방식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를 통해 통과시킬 계획입니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28일 법안이 통과된다면 주무 장관으로서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며 "지금은 거부권을 한다, 안 한다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저로서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임대차 2법과 관련해서도 "원상 복구가 맞다"면서도 "국회 상황상 법 개정이 어려우니 문제점을 줄일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국토부는 다음 주 중 전세사기, 공급대책을 내놓고 다음 달 민간 임대주택 모델을 발표할 방침입니다.
 
박 장관은 "전세사기 특별법은 다른 특검 등과는 달리 민생 관련 이슈라 여야가 충분히 논의하면서 갈 수 있다"며 "열린 자세로 토론할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입 기자들을 만나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강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임지윤 기자
SNS 계정 :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