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0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임박했습니다. 총선 참패를 계기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윤 대통령은 '채상병 특검법'(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에 대한 거부권을 시사했는데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채상병 특검'이 필요하다는 민심을 외면한 '마이웨이' 선언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1일 거부권 행사 유력…국힘 '이탈표 단속'
국회에 따르면 정부로 이송된 법안은 15일 이내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최종 시한인 오는 22일까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21일 국무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할 것으로 보입니다. 윤 대통령이 이미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당시 채상병 특검에 대해 "진행 중인 사법절차 수사를 보고 수사 관계자들을 믿고 지켜보는 것이 더 옳다고 본다"며 거부권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민주당은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인 28일께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에 나설 예정입니다. 현재 21대 국회 구성상 재적의원 295명 전원이 표결에 참석할 경우 197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특검법에 찬성하는 범야권 의원은 180명으로 계산됩니다.
즉 국민의힘 의원 총 113명 가운데 17명이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하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력화되고 채상병 특검이 출범하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채상병 특검법 국회 본회의 통과 당시 여당에서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재의결에서는 찬성하겠다고 밝힌 안철수 의원, 민주당 출신의 이상민 의원, 조경태 의원 등의 이탈표가 예상되는데요. 이번 총선에서 낙천하거나 낙선한 의원 55명 중 상당수가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경우 21대 국회에서 채상병 특검법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탈표 단속에 나섰습니다. 지난 14일 당 원내행정국은 각 의원실을 통해 본회의 개최가 예상되는 23~28일 사이 당 소속 의원들의 해외출장 일정을 파악하고, 각 의원들에게 출장 자제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추경호 원내대표도 공개적으로 이탈표를 단속하겠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추 원내대표는 17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들 전체가 당론을 지키는 것에 현재는 큰 틀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서도 "공개적으로 (재표결 찬성 입장을)이야기한 분들과 관련해서도 저희가 대화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심은 "특검 수용"…거부 땐 '역풍'
국민의힘 지도부의 21대 국회에서 이탈표를 단속하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2대 국회에서도 채상병 특검법을 곧바로 재발의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정권 심판' 민심이 분명하게 반영된 22대 국회는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여권에서 8표의 이탈표가 발생하면 거부권 무력화는 물론 개헌 저지선까지 뚫립니다.
그런데 이미 김재섭·한지아 당선인은 채상병 특검법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안철수·조경태 의원이 22대 국회에서도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한다면, 산술적으로 4표만 이탈해도 거부권이 무력화됩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탈표 관리 난도가 올라가는 셈입니다.
민심의 압박도 변수입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7~9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10일 공표,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채상병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57%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됩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 소장은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21대 국회에서 17표의 이탈표가 어려울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의 이탈표는 불가피한데, 이 자체만으로도 윤 대통령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며 "또 22대 국회 구성과 국민 여론상 윤 대통령도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22대 국회에서 이탈표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여당으로서는 협치를 통해 중재안을 찾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윤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