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국내 주요 그룹 오너일가가 올들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주주가치 제고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전격 시행한데 발맞춰 주주환원을 꾀하고 그룹 내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재계 10대 그룹 중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HD현대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5월 들어 총 18차례에 걸쳐 자사주 29만2348주를 사들였습니다. 총 매입규모는 196억원 수준으로, 정 부회장의 HD현대 지분율은 올해 3월 말 415만5485주(5.26%)에서 444만7833주(5.63%)로 증가했습니다.
(왼쪽부터)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아워홈 구지은 부회장.(사진=각사)
정 부회장이 HD현대그룹 계열사 주식을 장내 매수한 것은 2018년 3월 당시 현대로보틱스 지분 5.1%를 3540억원에 사들인 이후 처음입니다. 이는 지주사 디스카운트 우려를 해소하고 그룹 장악력을 키우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이달 초 HD현대마린솔루션이 상장하면서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 사례처럼 모회사와 자회사의 중복상장에 따른 주주가치 하락 가능성이 제기된데다 지난해 11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3세 경영에 시동을 건 만큼 리더십을 공고히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향후 증여나 상속세 마련 차원에서도 지분 확보는 도움이 됩니다. 배당 수익 등을 통해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어섭니다. 실제 한미사이언스 오너일가 또한 상속세 해결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취득과 배당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HD현대 주가가 박스권 흐름을 보이는 것은 지배구조 때문으로 주가상승을 위해서는 옥상옥의 지배구조 개선 필요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양 연구원은 또 “배당 재원인 자회사로부터의 수취 배당금은 오일뱅크, 마린솔루션, 조선 계열사의 실적 개선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증가한 배당 수익을 주주 환원 확대에 사용할 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사항”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부사장)도 올들어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습니다. 김 부사장은 올들어 73차례에 걸쳐 자사주 135만6000주를 장내 매수했습니다. 김 부사장의 한화갤러리아 보통주 지분율은 지난해 말 1.6%에서 5월10일 기준 2.29%까지 올랐는데 지분 규모는 지주사인 한화(36.15%) 다음으로 높습니다. 지분율 자체는 지배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지만 오너일가가 자사주를 꾸준히 매집한다는 점에서 책임 경영 의지의 표현으로 읽힙니다.
경영권 확보를 위해 자사주 매입카드를 꺼내든 곳도 있습니다. 범 LG가(家) 식자재 유통업체인 아워홈은 이달 31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신임 이사 선임과 자사주 매입 등의 안건을 결의할 예정입니다.
현재 아워홈은 창업주 고(故) 구자학 회장의 장남인 구본성 전 부회장과 막내딸인 구지은 부회장이 경영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으로, 구지은 부회장은 사모펀드에 매각을 검토하는 구본성 전 부회장에 맞서 전체 지분의 61%에 해당하는 1401만9520주를 매입할 방침입니다.
한편 시장에서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기업의 배당·자사주매입 등 주주환원 확대 기대감이 높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조기 정착 여부에 따라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주주가치 상승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