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시나리오, 폐지보단 재조정?…악재 여전한 'K-배터리'

'유죄 평결 트럼프' 대선 영향 크지 않을 듯
공화당 내 이탈표 없어야 'IRA 폐지' 가능
단, 폐지 가능성↓…보조금 축소에 무게
점유율 하락 점쳐…배터리 기업 투자 위축
"우리 기업 대규모 투자, 협상 레버리지 활용"

입력 : 2024-06-09 오전 11:00:00
[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성 추문 입막음 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유죄 평결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판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면서 'K-배터리'의 악재 시나리오는 씻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트럼프 재집권을 가정할 경우 미 인플레이션방지법(IRA) '폐지'보단 지원 규모를 축소하는 '재조정' 쪽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IRA 폐지가 실제 이뤄지기 위해서는 '트럼프 재선 성공', '공화당의 상·하원 장악', '공화당 내 이탈표 미발생'이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하나 '공화당 내 이탈표 미발생'은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IRA 변화는 K-배터리의 미국 점유율에 영향을 주는 만큼, 우리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협상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9일 산업연구원의 '한국 배터리산업 리스크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한국기업의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23년부터 현재 6.2%포인트 오른 42.4%로 일본(40.7%)을 제쳤다. (그래픽=뉴스토마토)
 
IRA 효과…K-배터리 미 점유율 '1위'
 
9일 산업연구원의 '한국 배터리산업 리스크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한국기업의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2022년 일본(48.0%)보다 낮은 36.2%에 불과했으나 1년 만에 6.2%포인트 오른 42.4%로 현재 일본(40.7%)을 제쳤습니다.
 
한국 기업은 미국 내 총 배터리 공급능력의 76.8%를 담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025년 미국 내 공급능력만 놓고 보면 일본(23.2%)의 3배 규모입니다.
 
K-배터리의 강세 요인은 IRA 영향이 큽니다. 한국이 앞지르기 시작하는 등 미국 배터리 시장의 점유율 1위로 등극한 데는 IRA 배터리 요건 적용 시점(2023년 4월) 직후인 2023년 6월 이후입니다.
 
IRA 배터리 요건이 상대적으로 우리 기업에 유리하게 결정되면서 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진 겁니다.
 
미국 배터리 셀, 모듈(팩) 생산 때 받는 kWh당 최대 45달러의 생산세액공제(AMPC)는 배터리 신규 공장 건설비용에 상응하는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IRA에 따른 AMPC 지원 규모가 2030년부터 점차 감소하는 구조를 예상하면 일본 기업과의 점유율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입니다.
 
황경인 산업연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은 "중국 시장의 폐쇄성(중국 기업 98% 점유)을 감안하면 한국 배터리산업이 사실상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언급했습니다.
 
 
9일 산업연구원의 '한국 배터리산업 리스크 분석' 보고서를 보면, IRA 폐지를 공언해온 트럼프의 재집권을 가정할 경우 법안 폐지보단 보조금 지원 축소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출처=산업연구원)
 
IRA 변화 불가피…'공화당 이탈표' 시나리오
 
최대 변수는 미국 대선에 따른 IRA 변화입니다. 우선 트럼프에 대한 유죄 평결은 대통령 자격에 영향을 주지 않다는 게 외신들의 공통된 관측입니다. 다만 IRA 폐지를 공언해 온 트럼프의 재집권을 가정해도 법안 폐지보단 보조금 지원 축소 가능성이 있다는 게 산업연 측의 분석입니다.
 
최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분석을 인용하면 435개 선거구 중 공화당 207개, 민주당은 203개 지역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머지 25곳 경합지역의 판세가 중요 변수로 작용하나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공화당 상원·하원 모두 다수당이 될 경우 법안 폐지의 결정적 핵심은 '공화당 내 이탈표' 여부가 관건입니다.
 
황 부연구위원은 "결국 공화당 내 이탈표 방지를 위한 개별 의원 설득이 전제돼야 하나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며 트럼프 취임 직후 공화당이 추진했던 오바마 케어 폐지 시도의 실패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이어 "현재 IRA와 일부 지역의 공화당 의원의 이해관계를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IRA는 상대적으로 공화당이 장악한 지역구에 더 많은 신규투자를 유발했다. 지역경제의 경제적 효과를 감안할 때 공화당 현직 의원이나 유력 후보가 지역 민심을 역행, 폐지 법안을 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실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IRA 효과 축소입니다. 트럼프가 전기차 보급 확대에 회의적인 점을 감안하면 행정명령을 통해 IRA 보조금 지원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동 중인 생산능력(CAPA)은 117GWh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발표한 미국 투자 계획들이 성공적으로 완료될 경우 2027년에는 5배 늘어난 635GWh 규모의 증가세가 예상됩니다. IRA 배터리 요건, 생산세액공제 등 IRA 기대효과가 반영된 예상치입니다.
 
하지만 트럼프발 전기차 성장 둔화는 배터리 기업의 투자 위축을 더 가속화하는 등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배터리 3사로서도 미국을 넘어 국내외 전반의 사업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터리 기업은 전기차 수요에만 80% 가까이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황 부연구위원은 "우리 배터리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미시간·오하이오·테네시·애리조나·켄터키·조지아·인디애나 7개 주에 대해서는 우리 기업의 투자가 생산·고용 등 해당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집권 시 IRA 폐지안 또는 IRA 관련한 신규 시행 지침안에 대한 양국 정부 간 협상이 진행될 경우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글로벌 투자 환경이 어려운 시기를 맞아 국내 투자 촉진을 위한 정책 지원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의 경우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는 투자세액공제 정도뿐인 상황으로 최소한 경쟁국에 준하는 수준으로 인센티브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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