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지적 무력충돌 초읽기…한반도 위기 자초한 '즉·강·끝'

대북전단→북 '오물 풍선'→'대북 확성기', 강대강 대치 반복
북, 6월 중 러시아와 정상회담 가능성…군사협력 고조 우려

입력 : 2024-06-10 오후 4:20:23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정부가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남북 군사 충돌의 뇌관이 한반도 전역을 휘감고 있습니다. 국내 탈북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계기로 점화된 북한의 '오물 풍선'과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맞대응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강대강' 대치 국면으로 흐르면서 한반도 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새로운 대응'을 위협하고 우리 정부는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으로 맞서면서 국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데요. 하지만 현 긴장국면을 해소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 사실상 윤석열정부가 한반도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가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재살포에 대응하기 위해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실시한 가운데 10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한국 측 초소 오른쪽으로 대북 확성기 관련 군사 시설물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북 확성기' 6년만 재개…북 "위험의 전주곡"
 
10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이 총 4차례에 걸쳐 살포한 오물 풍선은 총 1600여개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지난달 말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우리 측 탈북민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한 것이 빌미가 됐습니다. 
 
북한은 지난 9일 밤부터 이날 오전까지 약 310여개의 오물 풍선을 살포했는데요. 우리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 유지'라는 대북 기조에 따라 6년여 만에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한 반발 차원입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지난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재개됐다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중단된 바 있는데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전 방식입니다.
 
합참은 "확성기 방송 추가 실시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다"며 "오물 풍선 살포 등 비열한 방식의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합참은 이날(오후 4시 기준) "대북 확성기 방송은 실시하지 않았다"면서도 "북한이 비열한 행위를 할 경우 즉시 방송할 준비는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수위 조절에 나서면서도 '강력한 응징'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재차 전했습니다.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지난 9일 저녁 11시께 담화를 발표하고 "대한민국은 탈북자 쓰레기들의 도 넘은 반공화국 심리모략 책동에 대한 우리의 거듭되는 대응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6일과 7일 또다시 우리 국경 너머로 정치선동 오물들을 들이미는 도발행위를 묵인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대북 확성기 재개를 겨냥해 "매우 위험한 상황의 전주곡"이라면서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9일 오전 소방대원과 군 관계자가 인천시 미추홀구 학익동의 한 빌라 옥상에 떨어진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을 수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반도 안전핀' 뽑히자…DMZ·NLL '국지전' 가능성
 
현재의 긴장 국면은 2015년 박근혜정부 당시와 유사합니다. 그해 8월 박근혜정부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대응으로 11곳에서 대북 방송을 실시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언하며 서부전선에서 군사분계선(MDL) 남쪽을 향해 고사포탄 등을 쐈고, 우리 군은 수십발의 155㎜ 포탄으로 대응 사격했습니다. 또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이남에서 대북 확성기를 타깃으로 14.5㎜ 고사총과 76.2㎜ 평곡사포 세 발을 발사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대응'이 MDL이나 NLL·DMZ 부근에서의 기습적 국지 도발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겁니다. 
 
문제는 2015년과 달리 긴장 국면을 해소할 만한 수단이 없다는 겁니다. 당시 북한은 남북 대화 채널을 통해 고위급 회담을 먼저 제안했고, 이례적으로 지뢰 도발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강대강' 대치는 우리 측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시작됐음에도, 우리 정부는 민간단체의 '표현의 자유' 보장에 무게를 두며 접경지역 내 주민들의 안전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라고 명시했습니다. 또 남북 대화 채널은 물론 남북 연결 철도·도로 등에 지뢰를 매설하며 단절을 선포했습니다.
 
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헌법에 명시하며 법제화했으며,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 발사에 성공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더불어 한반도를 겨냥한 '눈'과 '주먹'을 장착한 상태입니다. 
 
여기에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일조한 것으로 평가받는 러시아의 군사기술 협력은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데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르면 6월 중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북·러 사이 군사·경제 협력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럼에도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고 있는 윤석열정부는 남북 사이 최소한의 '안전핀'이라는 평가를 받아 온 9·19 군사합의를 전면 폐기하면서 완충지대를 스스로 제거했습니다. 결국 국지전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현 상황을 윤석열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은 이날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무릎도 연골이 있어야 부딪치지 않는 법인데, 윤석열정부는 완충 장치인 9·19 군사합의를 사문화시켰기 때문에 남북이 언제 충돌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제는 더 이상 대화할 수 있는 창구나 방법이 없기 때문에 국지전이 벌어졌을 때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이 수반돼야 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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