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에 2인자 정현호 영향력 ‘막강’

위기관리 컨트롤타워 수행…정현호, 재무통에 인사·전략 거친 소방수
“깐깐해진 TF팀 자문…내부 불만도 커져”

입력 : 2024-06-17 오후 5:00:09
 
[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삼성의 총체적 위기 속에 사업지원TF팀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재용 회장의 재판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고, 핵심인 반도체사업은 하락 사이클로의 전환과 함께 공급망 위기, 차세대 경쟁 격화 등을 겪는 중입니다. 자연스레 위기 관리가 주된 화두가 됐고, TF를 이끄는 정현호 부회장의 영향력도 막강해졌습니다. 삼성전자 노조 등 일부는 ‘정현호 실세론’을 주장하는 등 과거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 부활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청문회를 계기로 미래전략실 해체를 약속했고, 대신 그룹 컨트롤타워 기능을 메우고자 TF팀을 설립한 바 있습니다. TF는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산하에 존재합니다. 미래전략실에 집중됐던 권한을 3개 TF에 분산시킨 것입니다. TF는 미래전략실 해체 약속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대안이었습니다. 그간 회사 내부조직으로만 운영되며 외부에는 업무내용도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공개되는 움직임이 작을수록 미래전략실 부활 우려를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컨트롤타워 부재…커지는 TF 역할
 
17일 재계 및 복수의 삼성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의 위기가 계속되자 이를 관리할 TF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TF 입김이 상당하다는 게 내부 전언입니다. 한 관계자는 “반도체가 수십조원 적자를 보니 불필요한 지출을 막고자 내부 검토가 깐깐해졌다”라며 “전문경영인의 대리인 문제를 줄이기 위해 TF팀의 경영자문 기능이 커진 것인데 그만큼 영향력이 강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현호 부회장은 과거 삼성전자 국제금융과에 입사해 미래전략실에 몸을 담기 전까지 삼성비서실 재무팀에서 일한 경력도 있습니다. 이런 재무통 경력은 미래전략실에 합류한 뒤 전략과 인사팀을 두루 거치며 위기 관리에 특화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과거 위기 때는 회장님 뜻을 대신해 미래전략실이 진두지휘했다”며 “지금은 미래전략실이 없으니 사업지원TF가 대신하는 것이고, 정현호 팀장의 역할도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공판 때문에 경영에 전념하기 어려운 이재용 회장을 대신해 경영진단과 의사결정을 돕는 징검다리 역할을 TF팀이 수행합니다. 문제는 지원 역할을 넘어 의사결정 자체를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그럼에도 정현호 부회장에 대한 이 회장의 신뢰가 두텁고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이 회장이 재판을 받는 동안은 현재의 TF팀 체제가 계속 유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하지만 특정 조직이 비대해지면 내부 반발이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입니다. 당초 TF는 미래전략실 해체 후 그 역할 중 일부만 가져왔습니다. 전략(M&A 등)과 인사 업무만 수행하며, 인사도 삼성전자 자체 인사팀과 별개로 계열사 간 인사이동 등 공통된 업무만 하기로 했습니다. TF팀이 이처럼 업무를 제한한 것은 미래전략실 색깔을 지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TF의 입김이 커지자 거부감이 생긴 것입니다.
 
삼성 관계자는 “TF팀이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형태는 어디까지나 자문 형식이지만 그룹 2인자인 정현호 팀장의 의견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비상경영 상태에 돌입하면서 TF팀으로부터 실패를 줄이기 위한 반려 의견이 많아지자 불만도 점차 쌓이는 상황”이라고 귀띔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임원들의 주말 출근이나 삼성전자 노조의 유급 휴일 연장 거부 등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이 과거 방식"이라며 "특히 임원들의 경우 위기에 따른 제한이 길어지면서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팀장(왼쪽). 사진=뉴시스
 
계속된 피로감에 인사 잡음도
 
실제, 수뇌부를 비롯한 인사 전반에 TF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내부 의심에도 직면했습니다. 지난달 말 이뤄진 경계현 사장(전 대표이사)과 전영현 부회장(전 미래사업단장)이 자리를 바꾼 원포인트 인사가 이 같은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TF팀이 인사를 지시한 주체는 아니”라며 “TF팀이 이사회 상부 조직이거나 정현호 팀장이 대표이사보다 상관인 개념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경계현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야겠다는 압박을 느꼈을 순 있으나 경질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그럼에도 절차상의 문제까지 해명되지는 않습니다. 상법상 임기 중 이사를 해임하려면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합니다. 경계현 사장은 자진 사임해 이런 의무는 불필요합니다. 그러나 주총에서 주주들이 정한 대표이사가 임기 중 교체되는 것은 이사 선임을 주총 전속권한으로 규정한 상법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입니다. 게다가 전영현 부회장이 맡게 된 DS부문장은 그간 등기임원인 대표이사가 책임졌으나, 내년 주총 때까지 미등기임원이 맡게 되면서 권한과 책임 간의 괴리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상법 취지를 훼손한다”며 “임시주총을 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TF는 삼성전자 내부 조직인데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지주회사에서 계열사들에게 주주권을 행사하든지, (권한 행사에)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지주사로 전환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메모리 점유율이 17%에서 11%로 떨어지고, HBM도 SK하이닉스에 뒤처지는 등 삼성의 위기 상황에서 이뤄진 문책성 인사로 보여진다”며 “상법에선 임기를 지켜주도록 하고 있으나, 대주주 입장에선 긴박한 경영 상황이다 보니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인사의 필요성에 동의습니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건 후 재벌 세습과 그 폐해에 대한 논란과 함께 이재용 회장의 미래전략실 해체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이사회 독립경영을 주장해왔습니다. '삼성공화국' 논란을 제공했던 미래전략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는 동시에 더 이상의 세습 경영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경영권 승계와 그 과정에서의 편법, 미래전략실 해체 등에 대해 삼성은 외부 연구용역을 맡겼습니다. 용역 결과는 이미 나왔지만 삼성은 내부 검토만 한 채 발표를 미루고 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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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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