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과거 중국의 삼국지가 떠오르네요. 결국엔 위나라가 다른 두 나라를 삼켰죠. 저마다 으르렁 대던 한중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협력무드를 잡았습니다. 그런 형식적 협약이니 효력도 약해보입니다. 일본과 라인야후 사태를 빚은 직후니 더 허울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라인야후 사태를 보면, 일본이 아시아 반도체 허브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허브란 곧 외자유치입니다. 외국자본에 대해 관대하진 못할망정 핍박이 웬 말입니까. 그러면서 허브를 자처하다니요. 허브 경쟁국가인 한국은 그 점을 따지진 못할망정 애써 큰일 삼지 않으려는 모습입니다.
라인야후 사태서 일본의 네이버 핍박은 개인정보 유출이 빌미가 됐습니다. 그간 페이스북 등 대형 커뮤니티도 더 많은 정보유출이 있었지만 자본관계를 정리하라는 식의 행정처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속셈이 비칩니다. 국내로 치면 국민 메신저가 된 카카오톡이 중국이나 일본 소유인 상황입니다. 그러니 못마땅한 것이죠. 소유지분을 자국에 팔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정보유출은 핑계입니다. 그런 식이면 세계 어느 외국자본이 일본이란 국수주의 허브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일본에 진출하는 TSMC 파운드리 투자 건과 비교됩니다. 일본은 TSMC가 현지 공장을 짓는 조건으로 최대 약 1조2000억엔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같은 외국자본인데 네이버에 대해서만 이리도 홀대합니다. 라인야후는 네이버 때문에 보안이 취약하다는 게 일본의 입장입니다. 네이버가 한국기업이라 국가간 정보 유출이 문제라는 것이죠.
그러면 파운드리도 국가적 범주에서 따져 봐야 합니다. TSMC는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업체입니다. 수많은 반도체 팹리스(설계회사)를 고객사로 상대합니다. 그러면서 각국의 설계도를 아우르게 됩니다. 자연히 고객사는 타사에 설계기술이 유출될 것을 염려합니다. TSMC는 그 점을 공략했습니다. 고객사의 설계사업 영역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해왔죠. 그 점을 파운드리 경쟁사인 삼성과의 차별점으로 내세워 점유율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TSMC가 설계 영역에 침범하지 않으니 보안 문제가 없을까요.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대만엔 수많은 설계회사가 존재합니다. 이들 설계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발판이 TSMC였습니다. 애초 대만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반도체를 키우기 위해 TSMC를 만들었습니다. 위탁생산만 하는 기업을 내세워 승부수를 띄운 것이죠. 지금 일본처럼 대만도 허브를 자처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TSMC를 필두로 대만은 반도체 생태계가 비약적 성장했습니다. 위탁생산을 뒷받침하는 후공정과 팹리스가 함께 도약한 것이죠. 역내 위탁생산업체를 지었더니 설계기술의 진보가 이뤄진 결과입니다.
대만엔 미디어텍, 리얼텍, 선플러스, 하이맥스, 노바텍, ESMT, apmemory, 홀텍, 안텍, 시트로닉스, 안데스, 이트론, ALI, 누보통, PHISON 등 글로벌 팹리스 메이커가 존재합니다. 정작 국내에선 고객사 영역을 침범한다던 삼성을 빼곤 이렇다 할 팹리스가 없습니다.
그런 대만은 중국에 가장 많은 칩을 수출하며 인력, 기술 유출도 많습니다. 대만 반도체 생태계가 한몸이라 생각하면 TSMC의 일본 진출도 기술 안보에 부정적인 셈이죠. 대만은 중국과 대치하면서도 칩 수급은 서로 의존합니다. 일본이 네이버를 내치는 논리면 TSMC를 모시려는 행위는 모순입니다. 또는 TSMC도 네이버처럼 토사구팽당할 것입니다. 국제사회에 비춰 일본은 진정 반도체 허브가 될 자격이 있는지 라인야후 사태를 두고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