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 정신질환' 근거 모르는 복지부

('게임중독' 프레임)①편견 조장하는 현행법…근거도 부실
과몰입·중독·정신질환자 기준 문체부·여가부·복지부 질의
복지부, 현행법 '게임 중독' 정의 묻자 ICD-11로 답변
법조계 "독자 기준 못 내고 미래 기준 제시" 비판

입력 : 2024-08-12 오전 6:00:00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11) 속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개념의 국내 도입 여부가 게임업계 안팎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게임 이용이 질병이나 중독의 원인이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적어도 법을 적용해 규율하려면 용어의 사용, 판단의 기준 등이 명확해야 합니다. 하지만 국내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요. 이미 시행 중인 현행 법들만 봐도 각각 '중독', '과몰입' 등의 단어가 혼재된 채 적시돼 있습니다. ICD-11 도입 논의가 한창인 이 때, 이 문제에 대해 <뉴스토마토>가 각 정부 부처에 따져 물었습니다. 각 부처의 답변을 공유하는 것과 더불어, 모호한 개념 아래 법 적용이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 즉 게임에 대한 오래된 편견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11)에 포함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라는 개념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9)에 도입할지 말지를 두고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각 부처 및 각 업계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현재진행형' 문제인데요.
 
그런데 ICD-11은 차치하고서라도, 국내 기존 게임 이용자 관련 규제에서조차 용어나 법 기준 대상이 모호한 상황입니다. 게임 '중독', '과몰입', '정신질환자' 등의 용어가 제각각 난립하고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 <뉴스토마토>는 각 부처에 각 용어의 개념과 사용 근거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청했는데요. 용어 사용에 대한 근거가 빈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복지부의 경우 현행법의 근거로, 아직 도입되지도 않은 ICD-11의 '게임이용장애'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12일 정부에 따르면, 게임 이용과 질병·장애 등을 연관 지은 현행 법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청소년 보호법',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등입니다.
 
여성가족부는 "법령에서 '인터넷 게임의 지나친 이용'에 대해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사진=엔바토엘리먼트)

 
'지나친 이용' 등 모호한 표현 난무 
 
우선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보겠습니다. 이 법 제12조의2와 3에 따르면, 정부는 '게임 과몰입'이나 게임물의 사행성·선정성·폭력성 등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합니다. 게임 사업자는 게임 이용자의 게임 과몰입 예방 조치를 해야 합니다.
 
청소년 보호법은 27조 1항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이 '인터넷게임 중독·과몰입 등의 예방 및 피해 청소년 지원'을 하도록 규정하는데요. 이 조항은 인터넷 게임 중독·과몰입이 인터넷 게임의 '지나친 이용'으로 일상 생활에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 손상을 입은 것을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은 게임·알코올·약물 중독을 나란히 두고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령 제16조는 정신재활시설 중 '중독자 재활 시설'을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또는 게임 중독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자' 등을 치유하거나 재활을 돕는 시설"로 규정합니다.
 
그렇다면 각 법령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는 게임 중독과 과몰입, 게임 중독에 따른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궁금해집니다.
 
문체부는 게임 과몰입을 "게임물 본연의 목적과 기능(재미와 여가 활동)에 부합되지 않는 지나친 이용으로 인해 주변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현실의 문제를 소홀히 하게 되는 등의 게임 행동"이라고 정의합니다.
 
반면 여성가족부는 청소년보호법상 인터넷게임 '중독·과몰입' 근거인 '인터넷게임의 지나친 이용'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법령에서는 '인터넷 게임의 지나친 이용'에 대해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다"며 "인터넷게임 이용에 따른 악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문체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청소년 이용자 친권자 등의 동의 및 고지 의무 등 청소년 보호 제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현행법상 '게임 중독'의 근거로 ICD-11의 게임이용장애를 제시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사진=엔바토엘리먼트)
 
현행법 근거로 ICD-11 내민 복지부
 
근거가 가장 부실한 답변을 보낸 곳은 보건복지부입니다. 보건복지부는 △게임 중독의 정의와 근거 △이 근거에 따른 정신질환 판단 근거 △해당 근거에 따른 중독자 재활시설 운영 현황과 최근 3년 간 관련 예산 등에 대한 질의에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복지부 관계자는 게임 중독의 정의에 대해, WHO가 규정한 게임이용장애의 정의를 인용해 답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지 말지를 논의중인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정의를, 엉뚱하게도 현행법이 규정한 게임 중독의 근거로 제시한 겁니다.
 
WHO는 게임에 대한 통제력이 손상되고, 다른 활동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게임이 다른 관심사 및 일상 활동보다 우선되고,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해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심각해지는 걸 특징으로 내세웁니다.
 
'게임 중독에 따른 정신 질환자'를 어떤 근거로 판단해 '중독자 재활 시설'을 지원하는지에 대한 답변도 궁색합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독자 재활 시설의 경우 알코올, 약물 또는 게임 중독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자 등을 치유하거나 재활을 돕는 시설"이라며 "각종 중독질환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이용이 가능하며 의료기관에서의 치료 이후 지역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돕는 곳"이라고 답했습니다.
 
게임 중독에 따른 정신 질환자가 시설 이용자에 포함된 이유에 대해선 "이용자 기준에는 행위 중독의 하나인 게임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포함된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습니다.
 
관련 재활시설 현황에 대해선 "서울 등 네 곳이 있으며, 인건비와 운영비 등은 지자체에서 100% 지원하고 있다"고 답하면서도 자세한 언급은 생략했습니다.
 
이를 두고 각계에선 정부의 게임 몰이해와 고민 없는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철우 변호사(게임이용자협회장)은 "소관 부처는 해당 법에 일차적인 유권 해석을 맡는 기관인데, 현행법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못 내놓고 국내 도입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미래의 기준으로 답변한다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잦은 인사 이동으로 인해 담당 공무원의 개념 이해도가 높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행위 중독도 쇼핑·스마트폰 중독 등으로 다양하고 모호한 축면이 있고, 행정부에서 각종 행위 중독 범주의 차이를 세세히 파악하기 어려워 명확한 답변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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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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