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한수원에 ‘월성 원전 조기폐쇄’ 문구 넣으라 압박”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산업부-한수원 진실 공방 계속

입력 : 2024-08-14 오후 3:16:29
[대전=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혐의를 다루는 재판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 원전 조기 폐쇄’ 문구를 담은 설비현황조사표 제출하라고 압박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반면 산업부는 한수원이 자체적으로 설비현황조사표 제출 여부를 검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를 강행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산업부와 한수원이 공방이 계속되는 모습입니다.
 
대전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최석진)는 1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전 한수원 사장, 김수현 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 등에 대한 1심 공판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백 전 장관이 피고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당시 한수원 기획처장 이모씨는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른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방안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했고, 내부적으로도 찬반이 엇갈렸다”며 “정부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말했습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022년 6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채 전 비서관과 공모해 지난 2017년 11월 한수원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문구가 담긴 설비현황조사표를 제출하게 하고, 이듬해인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 의결로 월성 1호기 가동 중단과 조기 폐쇄를 추진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것이 한수원에 더 이익인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탈원전을 국정과제로 추진하자 월성 원전이 경제성이 없는 것처럼 평가를 조작했다는 게 검찰 판단입니다.
 
“산업부의 특정 문구 요구는 이례적”
 
한수원 기획처장 이모씨는 이날 재판에서 “2017년 11월경 산업부와 회의를 마친 이후 전영택 한수원 부사장이 '월성 폐쇄를 한수원이 자발적으로 할 수는 없고, 산업부가 인과관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며 “사실상 정부 입장이 정해져 있고 책임은 말단인 한수원이 져야 하는 상황이니,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도 했습니다.
 
설비현황조사표에 ‘월성 원전 조기 폐쇄’ 문구를 기재를 요구한 산업부에 대해 이씨는 “정부가 (원전 폐쇄에 대한) 한수원의 의지를 보여주는 게 필요했던 것으로 파악했다”며 “개인적인 경험으로 봐도 특정 문구를 넣도록 요구하는 일은 이례적”이라고 진술했습니다.
 
대전 서구 대전지방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한수원 법무실장을 지냈던 노모씨도 이날 증인 심문에서 “원전 조기 폐쇄를 한수원이 나서서 했다는 문구나 폐쇄 의향을 드러내는 선제적인 조치 문구를 기재하는 건 어렵다는 의견이 내부적으로 나왔다”며 “당시 법무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정부 정책으로 탈원전을 추진한다고 해도 회사가 적정한 절차를 따라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산업부와 비용보존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산업부는 월성 원전 조기 폐쇄 과정에서 한수원에 대한 어떤 압박도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월 산업부 국장급 공무원은 공판 증인으로 출석해 한수원의 설비현황조사표 제출은 한수원이 자체적으로 검토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만약 산업부에서 압박을 가했다면 한수원과 협의한 내용의 문건이 작성됐을 것이고, 조사표 작성 방향을 검토한 기록이나 보고서가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대전=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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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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