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롯데그룹의 채무보증이 폭증했는데 롯데케미칼에 기인합니다. 그룹 보증은 1년새 1조8000억여원 늘었는데 그 중 1조6000억여원이 롯데케미칼에서 나왔습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계열사간 채무보증이 금지되나 해외 보증은 허용됩니다. 그 탓에 국내 전반적으로 해외보증이 우발채무로 바뀔 위험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적자가 길어진 롯데케미칼의 경우 국내 계열사(롯데건설)에 대한 지급보증(회사채)도 실행했습니다. 기업집단에 대한 부실 전이 위험이 커지는 양상입니다.
해외보증 5개 계열사 모두 적자
29일 롯데그룹 각사에 따르면 그룹의 상반기말 채무보증금은 7조6744억원입니다. 전년동기보다 1조7973억원 늘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상반기말 3조6247억원을 보증해주고 있습니다. 전년동기 대비 1조6791억원 커져 그룹 보증을 주도했습니다. 통상 재계에선 그룹 신용도를 바탕으로 자체 신용도가 떨어지는 계열사 대신 보증을 서줍니다. 주로 영업적자를 보며 자체 리파이낸싱 능력이 부족한 부실 계열사를 지원합니다.
상호출자제한집단의 경우 공정거래법상 경제력 집중 억제와 그룹 내부는 물론 사회적 부실 전이(시스템 리스크)를 막기 위해 계열사간 지급보증이 금지됩니다. 하지만 수출 활성화 목적 아래 해외 계열사는 허용해주고 있습니다. 그 탓에 롯데케미칼 자체적으로도 적자가 길어져 상환 능력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해외 계열 채무보증이 급증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작년까지 2년연속 영업적자를 봤고 올해도 분기 적자가 이어집니다. 그 속에 인수합병(M&A)과 대규모 시설투자를 병행하면서 차입금이 커졌습니다. 2021년 2조5713억원이었던 총 차입금은 2022년말 5조원을 넘었고 작년엔 6조원도 넘어 올 상반기말 기준 7조원에 근접(6조9322억원)했습니다.
LG그룹 역시 주력 화학사(LG화학)의 부진을 겪고 있지만 롯데그룹이 더 열악합니다. 2023년 5월 기준 롯데그룹 자본총액은 59조6960억원으로 부채총액 78조9920억원에 19조2960억원 모자릅니다. 보유 현금으로 대출을 갚고 자산을 다 팔아도 못 갚는 돈이 그만큼인 셈입니다. 이를 해결할 현금흐름도 그룹 전체 당기순이익이 150억원 적자를 보며 단절됐습니다. 올들어 롯데케미칼의 적자가 누적되는 등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반면, LG그룹은 자본이 88조2870억원이라 부채 82조9570억원을 감당할 수준입니다. 당기순이익 3조3590억원을 벌고 있어 현금흐름도 양호합니다. 경제력집중 측면에선 작을수록 부정적인 내부지분율도 부실전이 면에선 클수록 부정적입니다. 롯데그룹 내부지분율은 54.44%, LG그룹은 39.16%입니다.
롯데케미칼이 보증한 해외 계열사는 미국과 터키, 인도네시아 법인 등 모두 5곳입니다. 납사크래커(NCC)를 짓는 중이라 흑자를 내기 힘든 인도네시아 법인을 감안해도 5개사 모두 적자상태(작년 당기순손실)라 보증부담이 작지 않습니다.
게다가 공정거래법 규제를 우회해 국내 계열사(롯데건설)에 대한 보증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앞서 공정위는 법 24조 위반 여부를 두고 “국내 금융기관 여신관련 보증만 금지되는 것”으로 “회사채 발행 보증은 가능하다”고 유권해석했었습니다. 이에 정치권에선 공정위가 규제 범위를 좁게 봤다며 법 개정 여론도 일었으나, 22대 국회 전환 과정에서 유야무야된 분위기입니다.
롯데건설의 경우 적자를 보는 해외 5개사와 다르게 영업흑자를 거두고는 있으나, 과중한 부동산 PF우발채무 리스크가 사회적으로 문제시 됐습니다. 작년 말 기준 PF보증이 5조4000억원에 이르렀고 주택 및 분양경기 부진에다 미착공사업장 비중도 높아 상환 우려가 번졌습니다. 롯데건설은 지난 3월 2조3000억원의 PF유동화증권 매입펀드를 조성해 급한 불을 껐지만, 부동산 경기 부진과 높은 공사비, 금융비용 등 부정적 요인이 계속됩니다.
해당 펀드에도 롯데케미칼 종속회사인 롯데정밀화학이 2000억원 후순위 대주로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후순위는 대출 및 손실 발생 시 부담을 선순위보다 먼저 집니다. 후순위 대주엔 롯데물산(2000억원), 호텔롯데(1500억원), 롯데케피탈(1500억원) 등 다른 계열사도 참여했습니다. 선순위엔 국민은행,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참여해 1조2000억원을 대출하기로 했습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만큼 부실전이 우려를 키웁니다. 본래 유동화증권은 세계 금융위기를 유발하는 등 시스템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롯데건설 회사채 보증에 대해 앞서 경제개혁연대는 “국내 금융기관이 총액인수 방식으로 사채를 인수하기로 해 공모투자자에게 물량을 제 때 배정하지 못한다면 그 부담을 스스로 떠안게 돼 잔액인수 방식에 비해 위험이 크다”며 “그런데 롯데케미칼이 그 원리금 지급을 보장하고 있어서 사실상 사채를 인수한 금융기관의 위험부담은 거의 없다. 이는 총액인수 위험을 롯데케미칼이 대신 떠안은 것으로, 형식상 공모라도 실질은 사모사채에 보증한 것과 동일하다. 공정거래법 규제대상 채무보증으로 규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정위 채무보증 확인 요령(2022년9월)은 사모사채를 금융기관이 직접 인수하고 이에 대해 계열회사가 보증한 경우 채무보증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연대는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채무보증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상황에서 정면 위반은 어렵다”며 “문제는 편법적인 채무보증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공정위가 방치하는 점”이라고 짚었습니다.
보증 타고 번지는 재무·경영리스크
그간 재계에서 부실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은 배임 이슈도 초래했습니다. 관련 사건에서 대법원의 판결은 반으로 갈립니다. 2013년 대법원은 “채무변제능력을 상실해 손해가 발생하리라는 점을 충분히 알았을 경우 계열사라하더라도 배임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 판시에선 “관계회사의 회생가능성 내지 도산가능성과 그로 인해 예상되는 이익 및 불이익 정도 등에 관해 충분히 검토”하는 등 신의성실에 따른 경영상 판단 아래 지원했다면 “비록 사후에 손해를 입게 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라고 적혔습니다.
롯데 유통과 호텔 부문이 엔데믹 전환 이후 비용절감 노력으로 수익성 회복세를 보이나, 전통적 캐시카우인 석유화학 부문이 흔들려 그룹 위기가 번집니다. 그룹은 비상경영을 선언했습니다. 유통과 호텔부문도 내수부진과 오프라인채널 경쟁력 약화 문제가 지속됩니다. 지난해 그룹 핵심인 롯데케미칼 신용등급 하향으로 계열통합등급하락이 이뤄진 이후 올해도 주요 신평사들이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췄습니다.
롯데케미칼의 영업손실은 NCC 등 중국 증설이 집중된 기초소재 시황 약세에 기인해 구조적 불황이 부각됩니다. 그럼에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2조7000억원), 인도네시아 NCC 건설(5조원)을 강행하며 재무부담이 중첩됐습니다.
최근 한국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 회사채 신용도 관련 “회사가 범용 석유화학 비중을 축소하고 정밀화학, 동박, 수소 등 신규 사업을 육성하는 포트폴리오 전환 전략을 발표했으나, 여전히 기초화학 부문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사업다각화 수준이 유의미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재무부담을 줄이고자 자산 매각을 추진 중입니다. 롯데케미칼타이탄 등 기초소재 관련 사업의 전략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프로젝트 증설 속도를 조정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파키스탄 법인 매각을 추진하려다 무산되는 등 구매자가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중국 경기 상황에 따라 적자를 봤다가도 금방 흑자로 돌아섰으나 지금 상황은 다르다”며 “중국 증설이 계속되는 데다 미국과의 갈등으로 수출시장이 좁아져 경쟁이 치열하다. NCC 등을 매수해도 투자회수할 가능성이 희박하니 구매자가 드문 형편”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