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100분간 이어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진검승부'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승기를 잡았습니다. 첫 TV 토론임에도 '여유'를 보인 해리스 부통령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전략적 승리를 거둔 셈입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10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국립헌법센터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TV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리스 '압박'에…트럼프 수차례 '고성'
10일(현지시간) <CNN>이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TV 토론 직후 시청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TV 토론 시청자 605명 조사·오차범위 ±5.3% 포인트)에서 63%가 해리스 부통령이 더 나은 성적을 거뒀다고 답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라고 답한 비중은 37%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6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TV 토론 당시와 반대되는 상황이 연출된 겁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을 승자로 꼽은 시청자는 33%였던데 반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승자라고 답한 유권자는 67%였습니다.
이번 TV 토론의 상징적 장면은 두 후보의 악수였습니다. 토론이 시작되기 전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좋은 토론을 하자"고 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만나서 반갑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라"라며 악수에 응했습니다. 지난 6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TV 토론 때 악수도 하지 않았던 장면과 대비됩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7월 대선 주자가 된 이후 생방송 인터뷰나 기자회견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아 TV 토론이 '약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요. 여유롭게 시작을 알린 해리스 부통령은 토론 내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압박하며 주도권을 가져왔습니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해리스가 논쟁적인 토론에서 트럼프를 미끼로 삼았다"고 평가했는데요. 토론 초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중반에 접어든 뒤 해리스 부통령은 반복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자극했습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러 번 고성을 지르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해리스 부통령이 이번 토론에서 우위에 섰다는 공통된 의견을 내놨습니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토론에 능하지 않다는 평가들이 많았지만, 생각 외로 준비를 잘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간의 자질 논란 등에 대해 분명히 해소시킨 계기가 된 토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한 게 가장 큰 포인트"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해리스 부통령이 성공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도 핵심 지지층에 대한 호소를 하는 전략 면에서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리스 부통령이 조목조목 잘 싸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본전 이상을 거둔 것"이라며 "완전히 압도한 것은 아니지만 대선의 흐름을 유리하게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국립헌법센터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TV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리스, '경제 약점' 되레 역공
이번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창'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방패'를 들었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약점이 될 수도 있었던 경제 문제로 역공에 나섰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기회의 경제'를 강조하는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자와 대기업에만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밝힌 보편적 관세에 대해 '트럼프 판매세'라고 정의하며 중산층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중산층을 희생해 억만장자 감세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려고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난 판매세 부과 계획이 없다. 중국을 겨냥한 관세부과"라고 반박하며 "해리스가 관세가 싫다면 (재임 기간에)없앴어야 했다"고 꼬집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 문제와 관련해서도 "트럼프가 무역전쟁을 초래했다"면서 "집권 당시 중국에 미국산 반도체를 계속해서 판매함으로써 우리를 팔아넘겼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의 경제정책은 아무 계획도 없고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을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며 "중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도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고 중국과 그동안 이득을 본 국가들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오는 10월 2차 토론을 제안하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