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감사'합니다

입력 : 2024-09-24 오전 6:00:00
<감사합니다>는 tvN에서 방영한 12부작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제목으로 쓰인 '감사합니다'는 "Thank you"라는 뜻이 아닙니다. 조사하고 감찰하는 직무인 '감사(監査)'를 의미합니다. 즉 드라마의 제목은 "감사를 진행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주인공은 배우 신하균씨로, 건설사 감사팀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대략적 줄거리는 주인공이 감사팀과 함께 건설사에서 벌어진 횡령·배임, 채용비리, 부정청탁, 기술유출, 사망사고 등을 파헤치고,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한다는 겁니다. 
 
드라마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감사팀을 소재로 다뤄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직장에 고생하던 남녀 주인공이 갖은 고초 끝에 마침내 연애' 같은 식상한 내용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직에선 어떤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직의 상층부는 그걸 어떻게 은폐해서 이득을 챙기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주인공과 감사팀은 안팎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각종 비리를 파헤치고 폭로했습니다. 불합리한 문제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장면에선 많은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넘어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합니다.
 
느닷없이 드라마 이야기를 길게 하는 건 조직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감사팀의 모습에서 윤석열정부와 감사기구의 관계가 묘하게 겹쳤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업 단위에선 조사하고 감찰하는 조직이 감사팀으로 일원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 단위에서도 감사원이라는 전담 감사기구가 존재합니다. 아울러 권력 견제와 부패 예방, 담합 방지 등을 위해 업무 영역별로 감사기능을 가진 별도 기구를 뒀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세청, 국정원 등입니다. 현재 운영이 중단된 대통령실 특별감찰반도 있습니다. 대통령 친인척,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 행위를 감찰하는 곳입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2년반 동안 벌어진 여러 사건·사고를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굵직한 것만 추려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서울-양양고속도로 특혜 시비, 대통령실 이전 의혹, 방송장악 논란, 대통령실 사적 채용 문제 등입니다. 하지만 의혹들은 시원하게 밝혀진 게 없이 물음표만 남긴 채 기억 속에서 잊혀졌습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의혹의 뿌리가 되어 또다른 논란을 촉발했습니다. 급기야 모든 의심의 눈초리가 한 방향으로 모아지는 가운데 김 여사가 22대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처신입니다. 그런데 조직의 불합리한 문제, 비리, 의혹을 조사하고 기강을 바로 세웠어야 할 감사기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권익위는 김 여사의 명품백에 면죄부를 줬고, 검찰은 김 여사를 황제조사한 끝에 무혐의 처리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직의 환부를 도려내기보다 방치, 곪아터지도록 만든 게 바로 감사기구입니다. 감사기구들의 직무유기입니다. 
 
권력은 유한합니다. 윤석열정부도 2년 뒤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납니다. 감사기구들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라는 시스템 오류를 계속 방치한다면, 감사기구가 국민으로부터 '감사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최병호 공동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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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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