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마크맨을 했습니다. 마크맨이란 언론사, 특히 정치부에서 쓰는 말인데, 특정 인물을 전담해 취재하는 기자를 말합니다. '정치인 이재명'을 마크하는 동안 국회엔 가본 적도 없던 주니어 기자는 정치부 팀장이 됐습니다. 스스로를 '변방 장수'라고 했던 이재명은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가 됐습니다. 물론 마크맨을 하는 365일 24시간 내내 이재명을 취재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오래 이 대표를 만났고, 열심히 공부했고, 일화를 모았고, 주변인을 취재했습니다.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편집자)
"성남 가서 이재명 시장 취재해"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들썩들썩거렸던 2016년 가을. <뉴스토마토>도 국정농단 특별취재팀을 꾸렸습니다. 당시 4년차 기자였던 저도 특별취재팀에 합류했습니다. 아침마다 회사에 모여 회의를 했고, 취재 아이템과 방향이 정해지면 각자 밖으로 뛰어나가 취재를 했습니다. 그러던 11월의 어느날. 정치부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할 말이 있으니 회사로 들어오라"는 겁니다. 의아했습니다. 당시 저는 산업1부 소속이었고, 특별취재팀은 편집국장 지휘로 운영됐기 때문입니다. 정치부장이 저에게 따로 할 이야기가 있을 리 없고, 굳이 회사로 오라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산업1부장에게 물어봤지만, "가보면 안다"라는, 알듯 모를듯 애매한 말이 되돌아왔습니다.
회사로 들어가 정치부장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동그란 얼굴에 각진 안경을 쓴 정치부장은 웃음을 지으면서 쪽지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성남시청 직원 두 명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성남시청으로 가라. 이재명 시장을 취재해"라고 했습니다. 혹시나 싶었는지 "편집국장 지시"라는 말도 붙였습니다.
2016년 11월17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시국 버스킹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맞아 가장 앞장서 '박근혜 탄핵'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들과 중진 의원들이 정치적 역풍과 민심 이반을 우려해 입조심을 할 때, 광화문 촛불집회 선두에 선 이 시장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기초자치단체장이 국회의원보다 더 주목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언론의 관심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로 쏠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혹시라도 하야한다면,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이들이 바로 그 두 사람이었으니까요. 정치부장에게 "문재인, 안희정도 아니고 이재명이라고요? 그걸 정치부도 아닌 제가 왜요?"라고 되묻지는 못했습니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자면, 그때는 부장이라는 직책이 하늘 같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속으로만 아쉬움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문재인이나 안희정 취재가 아니라 이재명 취재라니…아, 내가 일을 못해서 성남시청으로 좌천되는 것이구나."
2016년 11월28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 중구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열린 사회적경제 리더십 포럼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성남시청엔 성남시장이 없더라
이튿날부터 성남시청으로 매일 출근했습니다. 정치부장이 알려준 두 사람을 가장 먼저 찾아가 인사를 했습니다. 유미열 성남시청 공보팀장과 김남준 대변인입니다. 유 팀장은 계속 회의가 있는지 무척 바빠 보였습니다. 김 대변인은 이 시장의 발언을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으면서 녹취록을 만드는 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 시장이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며 주요 인물로 급부상하자, 공보실 역시 시장의 일정과 발언을 챙기느라 더욱 바빠진 듯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주재기자도 아니고, 정치부도 아닌, 산업부 기자가 별안간 성남시청을 출입하겠다고 했으니 두 사람은 속으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을 겁니다. 김남준 대변인은 성남지역 유선방송인 '아름방송' 기자 출신으로,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재명의 최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남시청 출입기자로 등록했지만, 이 시장의 얼굴을 좀처럼 볼 수 없었습니다. 혹시 동선을 놓친 게 아닐까 싶어 구간반복을 하듯 시장실부터 시청 출입문을 몇번이고 살폈습니다. 그래도 이 시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 시장은 광화문이나 여의도, 라디오 방송사들을 다니며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는 데 전념한 겁니다. 이 시장의 인기가 높아지자 타 지역에선 강연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이 시장은 거기도 갔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성남시청 전경. (사진=뉴시스)
시장이 성남엔 없고 외부 일정만 다닌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했고, 시국이 시국이었지만, 당연히 좋은 이야기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청 직원들이야 입을 다물었으나, 이야기를 나눴던 지역매체 선배들은 "이 시장이 구름 위로 붕 떴다"라고 했습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이 시장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인지도가 확 떴다는 말일 겁니다. 동시에, 무엇에 홀린 것처럼 지역 현안은 내려놓고 밖으로만 돌아다닌다는 비아냥도 담겼을 겁니다. 물론 이 시장이 시정 현안을 아예 내팽개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 눈엔 지역 현안보다 정치와 국정의 문제, 외부 강연 등에 더 시간을 할애하는 이 시장의 모습이 마냥 좋게만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이 시장을 직접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취재를 못하는 건 아닙니다. 일단 이 시장의 주변 인물들부터 만나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언론을 검색해서 이 시장의 인맥도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지역매체 선배들에게 누가 이재명을 가장 잘 알고,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느냐고 묻고 다녔습니다. 모두 한 사람을 지목했습니다. 김용입니다.
(계속)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