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백 등을 건네받은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최 목사를 모두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10개월여의 수사와 두 번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를 거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중앙지검은 이날 불기소 처분의 이유를 이례적으로 상세히 설명했는데요. 김 여사와 최 목사에 대한 각 수심위의 결론이 달랐고, 최 목사의 기소를 권고한 수심위의 권고와 다른 결정을 내리면서 생길 논란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최재영 목사가 지난 9월2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가방 등을 선물한 최재영 목사에 대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번 사건에 적용됐던 혐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인데요. 이 법은 2015년 3월27일 제정돼 2016년 9월28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당시 공직자의 부패·비리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는데, 형법상 뇌물죄만으로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못하면 처벌되지 않는 허점이 드러난 겁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무거운 형벌을 규정하고 있지만, 은밀하게 주고받는 뇌물의 특성상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공직자들의 부패나 비리가 쉽게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청탁금지법은 이런 허점을 보완해 부정청탁 관행을 근절하고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함으로써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공직자 등이 금품 등을 수수하는 행위를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는데요. 공직자의 배우자가 받는 금품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직무관련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법 제정을 논의하면서 배우자가 공직자라는 이유로 사생활의 영역까지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우려로 인해 규제를 느슨하게 한 겁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한 최종 처분으로 인해 청탁금지법은 국민의 법 감정과는 동떨어진 규정이라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우회적으로 금품 등을 수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지적입니다. 핵가족이 보편화된 현재라도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사이라면 많은 영향을 끼치며 살게 되는데요.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를 살려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려면 적어도 공직자 등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은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과 상관없이 금품 등의 수수 행위를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공직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생활의 영역이 지나치게 제한되면 기본권 침해가 논란이 될 수 있는데요. 공직자의 청렴도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을 고려한다면 공직자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더 촘촘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적절한 수준의 제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법의 허점과는 별개로 검찰의 처분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는데요. 대통령의 직무 범위는 매우 포괄적인데도 검찰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너무 좁게 해석한 것은 아니냐는 겁니다. 검찰은 최 목사가 김 여사를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명품 가방을 전달한 것뿐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법리적인 문제를 빼더라도 대통령의 배우자가 만남의 대가로 고가의 선물을 받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수사 결과를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 사건의 고발인인 <서울의 소리> 측은 항고를 하겠다는 입장인데요. 검찰청법 제10조는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고발인은 관할 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항고할 수 있고, 항고가 기각당하면 검찰총장에게 재항고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고발인의 경우 형사소송법 제260조에 따라 관할 고등법원에 하는 재정신청은 일부 범죄에 대한 고발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한데요. 항고와 재정신청은 일반적으로도 인용률이 매우 낮고 이번 사건은 고발인이 재정신청을 할 수 있는 대상 범죄가 아니어서 항고만으로는 결과가 바뀌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세간에서는 이제부터 공무원에게 청탁하려면 배우자나 자녀에게 친목의 의미로 금품 등을 전달하고 나중에 원하는 바를 말하면 되겠다는 말도 나올 정도입니다. 공직자의 청렴도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던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현실을 고려하면 공무원 등의 배우자나 직계존비속까지도 청탁금지법을 공무원 등과 동일하게 적용하거나 어느 정도 차등을 두고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등 개선이 필요합니다.
국가의 기능이 커지면서 공공기관의 행위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점차 커지고 있는데요. 공무원의 직무집행 공정성과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직결되고 국민이 공정하고 제대로 된 공공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청탁금지법이 본연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개선을 통해 더 엄격하고 촘촘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