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유근윤·차종관 기자] 천공이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된다"고 발언하자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을 열고 포항 영일만에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천공이 "서울과 경기도를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국민의힘은 메가서울 구상을 꺼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윤석열정부의 정책과 여당의 기조가 천공의 말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무속인 천공이 국정에 개입한다는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천공이 공식 유튜브 채널 '정법시대'를 통해 강의하는 모습. (사진=정법시대 유튜브)
천공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일 때부터 윤 대통령 부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2022년 12월15일 <일요신문>은 천공이 지인들에게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큰일(대통령 출마) 준비해라. 내가 시켰다"라고 주장하는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녹취록에서 천공은 윤 대통령을 여러 차례 "석열이"라고 지칭했을 정도입니다. 이러다 보니 윤 대통령이 대선 이후에도 천공에게 조언을 얻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옵니다. 특히 천공이 윤 대통령 부부에게 의견을 전하는 수준을 넘어 국정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큽니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천공이 한 강연 영상을 분석하면, 제기된 우려는 기우가 아닐 수도 있어 보입니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후 국정분야에 대한 천공의 강연이 급증한 겁니다. <뉴스토마토>가 천공의 유튜브 영상 5년치를 분석했더니 윤 대통령 당선 전 10개 중 1개였던 국정분야 영상이 당선 뒤엔 4개 중 1개꼴입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6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영일만 앞바다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대통령, 천공 '산유국 된다' 발언 후 "영일만에 석유 있다"
"우리도 산유국이 된다. 엄청난 값으로 쓸 수 있는 것들이 파면 다 나온다. 이 나라 밑에 가스고 석유고 많다. 예전에는 손댈 수 있는 기술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있다. 대한민국 밑은 아주 보물 덩어리다. 한반도에는 인류의 최고 보물이 여기 다 있는 거다. 앞으로는 쪼만한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런 귀한 것을 만지면서 국가가 일어선다."(2024년 5월16일, 강연 제목: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지)
천공은 지난 5월16일 정법시대 유튜브에서 한국도 산유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이 올라오고 채 한달이 되지 않은 6월3일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 검증도 거쳤다"며 "지금부터는 실제 석유와 가스가 존재하는지, 매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탐사 시추의 단계로 넘어가는데, 국민 여러분께서 차분하게 시추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김병수 김포시장이 지난해 11월7일 경기 김포시 장기본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대표들과 '서울 편입 공론화'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천공 "서울과 경기 통합" 꺼낸 후 여당은 '메가서울' 본격화
"행정도시를 옮길 게 아니고 서울시를 다시 판을 짜야 된다. 모든 경기도를 통합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만들어야 한다. '대광역시정'을 해야 한다. 경기도를 수도권이라고 하지 말고 '수도 서울'로 바꿔야 한다 경기도를 다 합하고, 서울시는 행정시로 바꿔야 한다. 주변을 둘러싸는 곳을 생활권 주거지로 바꾸면 수도권 집값 문제 해결되고 행정·교육 문제 다 해결된다."(2022년 1월25일, 강연 제목: 세종시로 행정수도 이전 논의)
천공은 지금으로부터 2년반 전인 정법시대 유튜브에서 서울과 경기도 통합론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지난 총선 당시 국민의힘은 행정구역 개편 특별법을 준비했습니다. 경기도 김포·구리·광명·과천시 등을 서울로 편입하는 '메가시티' 방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체코 공식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남자들이 대통령을 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 정치는 영부인이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 앉았고, 영부인은 그 자리에 앉았으니, 영부인이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 대통령이 움직일 방향이 달라진다. 이런 내조를 할 줄 알아야 된다. 앞으로 영부인이 어떻게 하느냐 (에 따라) 대한민국 위상이 달라진다. 영부인이 앞으로 자기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영부인이 나가서 그 나라 대통령도 만날 수 있다. 영부인이 바빠져야 한다. 그것이 국익에 엄청난 길을 열어간다."(2022년 5월31일, 강연 제목: 2022 한미정상회담의 성과 - 영부인의 외교)
천공은 2022년 5월31일 정법시대 유튜브에서 김 여사가 정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권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김 여사는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으로 압박을 하는 중에도 단독 일정을 소화하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에는 김 여사의 허위 경력 기재와 논문 표절, 주가조작 연루 의혹으로 논란이 일자 천공은 "밖에 나오면 안 된다. 대통령 되고 나서 영부인으로서 나오라"며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 그러고 나서 실력발휘를 하라"고 조언한 바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김건희 여사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9일 서울 주한영국대사관을 찾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조문한 뒤 조문록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천공 "용이 와야 한다"…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영향줬나?
"용산에는 어떻게 그 힘을 써야 하느냐면, 용이 와야 된다."(2018년 8월16일, 강연 제목: 용산의 활용 방안)
천공은 2018년 8월16일 정법시대 유튜브에서 "용산에 용이 와야 된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이는 윤 대통령이 당선 직후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겠다고 고집하게 된 배경으로 의심되고 있습니다.
천공은 2022년 4월3일 촬영된 '文·尹 정권교체기의 협치 가능성' 영상에서 "국회에서 예산을 안 주니, 대통령이 국방부 앞에 천막을 치고 있는 것"이라고 강의한 바 있는데, 다음 날 윤 대통령은 "야전천막을 치더라도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거의 같은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문을 하면 나쁜 기운이 붙어 올 수 있으니 안 하는 게 좋다."(2022년 9월15일, 강연 제목: 조문(弔問))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할 당시, 전용기는 2022년 9월18일 오전 7시에 출발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공이 조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강의하자, 출발 이틀 전에 비행기 출발 시간이 오전 7시에서 오전 9시로 바뀌었습니다. 늦게 도착한 윤 대통령은 결국 조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실은 현지 교통사정 문제로 추모를 취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다시 운용되려면 딱 한 가지를 바꿔야 하는데 그건 바로 노동자 퇴치 운동."(2022년 10월31일, 강연 제목: 대한민국 노동자 퇴치 운동)
천공은 2022년 10월31일 정법시대 유튜브에서 '노동자 퇴치 운동'을 주장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 대응하고, 경찰과 국정원은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대륙을 이끌어줘야 한다"(2023년 8월28일, 강연 제목 : 아프리카 대륙 발전의 교두보)
천공은 지난해 8월28일 정법시대 유튜브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지원을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지난 6월 윤 대통령은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 개회식에서 2030년까지 100억불 수준으로 ODA(공적개발원조) 규모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상속세를 30%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2021년 5월10일, 강연 제목: 삼성가(家)의 막대한 상속세 납부)
천공은 2021년 5월10일 정법시대 유튜브에서 상속세 30% 인하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6월 대통령실은 상속세 30% 인하 정책 추진을 발표했습니다.
천공이 과학 기술이 무용하다며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점도 알려졌습니다. 이후 윤 대통령은 과학 이권 카르텔 타파를 외치며 과학기초연구(R&D) 예산을 5조6000억원 삭감했습니다.
이외에도 천공의 강의에서 도어스테핑 무용론이 나오자, 며칠 후 도어스테핑이 실제로 중단됐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지난해 11월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중에 천공 관련 자료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본명은 이천공…'숫자 2000' 의혹에 대해 해명하기도
올해 초에는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과 관련해 천공의 본명인 '이천공'에서 의대 정원 규모인 2000명이 나왔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6급 이하 실무직 공무원 2000명 일괄 승진, 늘봄학교 2000곳 생성, 무료급식소 쌀 2000kg 후원, 한미 이공계 분야 청년 인재 2000명 교류 등 윤석열정부에서 진행된 정책들에 2000이라는 숫자가 유독 많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2000명 증원을 한다고 이천공을 거기에 갖다대는 무식한 사람들이 어디있냐. 나는 성은 '이'고 '천공'은 하늘의 호다. 호를 내 이름으로 바꿔서 내 이름 자체를 천공으로 만들었다. 무속 프레임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은 치사스럽다. 최순실을 한번 작업해서 덕을 본 걸 가지고 나를 거기에 끼워 맞춘다. 내가 한 사람 두 사람 바른길을 가르쳐주고 다 좋아지니깐 이제 70~80만명이 (자신의 강연을) 공부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게 못마땅하냐. 지금 대통령이 됐든 영부인이 됐든 이 사람들도 인터넷에서 (자신의 강연이) 너무 좋아서 공부를 한 사람인데 매도한다."(2024년 4월4일~6일, 강연 제목: 윤석열 정부와 숫자 2000)
천공은 지난 4월4일부터 6일까지 정법시대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의대 증원 관련 의혹에 대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윤 대통령을 연결짓는 의혹 제기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 겨울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하며, 다음해 가을에 통일해야 한다. 통일이 이뤄지면 공로를 인정받아 윤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될 것이다."(2024년 9월4일, 강연 제목: 尹 대통령 '8.15 통일 독트린' 발표)
천공은 지난달 4일 정법시대 유튜브를 통해 올해 겨울 한국의 핵무기 개발과 다음해 가을 통일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통일 선포와 동시에 남북의 모든 죄수를 방면하고 한반도 총사면을 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지난 6월1일 <스카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는 "내치를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에게 맡기고 국제사회로 눈을 돌리는 것이 대통령 개인도 나라도 살길"이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휴전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윤 대통령이 해결하면 세계의 영웅이 되고 세계가 (한국과 윤 대통령을) 다시 본다"고도 제언했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
박만규 인턴기자 manky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