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가업상속공제가 부자 감세의 수단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정부는 일정기간 가업을 영위한 기업인이 상속인들에게 가업을 승계하며 상속세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라고 밝혔지만, 대상 기준이 늘어나면서 일부 소수 기업에만 특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15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25년 만에 전면적인 상속세 과세표준과 세율 완화에 나섰습니다. 그 중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기업의 가업상속공제를 최대 6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2배 늘리고 기회특구기업은 한도를 없애기로 했습니다.
가업상속세는 기업의 소유권이 세대 간에 이전될 때 부과되는 세금으로, 상속받는 자산의 가치에 따라 세금이 결정됩니다. 10년 이상 운영한 기업의 원활한 가업상속을 지원하기 위해 상속재산의 일부를 과세가액에서 공제해 주는 제도이기도 한데요.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 중견기업은 애당초 매출액 기준 3000억원 미만이었지만, 2021년 이후 꾸준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매출 5000억원 미만 중견기업까지 확대됐고,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밸류업 중견기업은 매출액과 무관하게 모두 가업상속공제를 해주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중견기업, 이미 10곳 중 9곳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
정부가 중견기업 등의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을 늘리겠다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중견기업 10곳 중 9곳 이상이 적용 대상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더 많은 기업들이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해 마련한 정부의 정책이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2년 결산 기준 국내 중견기업 5576곳 중 연 매출액이 5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423곳이었습니다.
바뀐 기준에 따라 중견기업 92.4%는 지금도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입니다. 연 매출액이 업종별로 최소 400억원, 최대 1500억원 이하인 중소기업도 공제 매출액 요건을 만족합니다. 이미 대다수의 중견기업이 가업상속공제 대상임에도 정부는 추가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요건 등이 복잡해 정작 혜택을 누려야 할 중소기업이 이 제도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특히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 특례'를 받으려면 승계 후 5년간 가업 유지 등 여러 조건을 지켜야 하는데요.
이 특례는 중소·중견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한 60세 이상 부모가 18세 이상 자녀에게 회사를 증여할 때 일정 가액에 10%의 낮은 세율을 적용합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 특례를 신청한 건수는 총 410건(과세 미달 포함)이었습니다. 같은 해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창업주가 70대 이상인 사업장의 1.3%(3만2461곳)에 불과한 수치입니다.
정부의 가업상속공제제도의 도입 취지와는 달리 활용도가 낮은 것은 세법상 적용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상속을 앞두고 있는 기업주들이 이 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 의원은 "대상을 더 확대하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주 일가에 혜택만 주는 꼴"이라며 "적용 대상을 더 늘리기보다 제도 취지에 맞게 사후관리요건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조세정책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
"가업상속공제, 특정 요건 만족 소수 기업 특혜"
가업상속공제 대상 중견기업 매출액 기준이 완화됐지만, 최근 공제 대상에 포함된 대형 중견기업 실적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때문에 가업상속공제가 특정 요건을 만족하는 대기업 등 일부 소수 기업에만 특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세청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견기업의 가업상속공제 금액은 1889억원으로 1년 전(270억원)의 7배 수준으로 증가했습니다. 가업상속제 건수도 같은 기간 18건에서 26건으로 뛰었습니다.
구체적으로 1000억원~3000억원 구간이 831억원(4건)으로 가장 많았고, 100억~500억원(545억원, 10건), 500억원~1000억원(377억원, 4건) 등의 순이었습니다.
반면 매출 최고 구간인 3000억~5000억원 중견기업의 가업상속공제는 0건이었습니다. 대형 중견기업의 가업상속공제 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가업상속공제 대상 확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개정안에 따른 실제 수혜 대상이 수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준대기업 사주 일가에 집중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막대한 상속세를 물어야 하는 총수 일가의 ‘상속세 완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차 의원은 "매출액 기준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실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특정 요건을 만족하는 소수 기업에 대한 특혜가 될 수 있는 만큼 제도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 들어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이익을 주는 감세로 복지와 지출이 줄어들었다"며 "조세·제정 정책의 커다란 퇴행이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