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집단 규제 또 완화…“공정거래법 무력화”

내부거래·해외배당 감세, 친족규제 완화 이어
CVC 금산분리 부작용 문제 안전장치도 풀어
“국내 역차별 얘기 나올 수순…결국 다 풀어 줄 것”

입력 : 2024-10-21 오후 2:20:34
[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공정거래법상 경제력집중 억제 시책이 현정부 들어 지속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내부거래 감세, 해외배당 감세, 동일인 친족규제 완화에 이어 기업형벤처캐피탈(CVC)의 해외 출자규제를 풀어줍니다. 일반지주회사는 본래 금융자본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경제력집중을 억제하는 게 공정거래법 취지입니다. CVC는 이런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문제로 도입 당시부터 비판이 많았는데 우려대로 규제를 풀어주게 됐습니다. 이는 앞선 규제완화 조치와 연결돼 대주주 총수일가의 해외투자와 관련 일감몰아주기 유인을 키우면서, 기업자본이 해외로 유출될 것이란 우려마저 낳습니다.
 
 
 
CVC 해외출자 규제도 풀어준다
 
21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당초 정부와 여당은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CVC 규제 완화 법안도 발의했었습니다. 골자는 CVC의 외부자금 유치 한도를 늘리면서 총 자산 중 해외투자 금액 제한 비중도 현행 20%에서 30%까지 풀어주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거대 야당이 포진한 국회를 넘기 어려운 쟁점이 있었습니다. 금산분리 및 경제력집중 억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취지를 훼손한다는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정위가 법상 지침 개정을 통해 국회를 우회합니다. 지난 18일부터 오는 11월8일까지 행정예고한 지주회사 규정에 관한 해석지침 등 개정안에 담긴 내용입니다. 개정안은 20% 내에서만 해외기업에 투자하도록 한 규정에 예외를 둡니다. 제한 규정이 적용되는 해외기업 범주에 중소기업창업지원법상 규정한 국외 창업기업은 제외하는 게 골자입니다.
 
국외 창업기업은 대한민국 국민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는 사업 개시 7년 이내 기업으로서 국내 법인과 사업적 연관성을 가지거나 사업장에 상시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으로 정의됩니다. 더 구체적으로 국내법인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이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최다출자자인 법인을 외국에 설립하는 행위가 국외 창업입니다. 이 국외창업기업 요건에는 ▲국외창업법인을 설립한 국내 법인과 물품 또는 용역을 거래하는 등 사업적 연관성을 가질 것 ▲개인이 국외 창업한 경우 국외창업법인이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법인을 국내 새로 설립하고 그 법인과 사업적 연관성을 가질 것(혹은 상시근로자 고용) ▲법인인 창업기업이 국외창업기업을 설립한 후 국내 창업기업을 폐업한 경우 국외창업법인이 국내에 사업장 등을 설치운영하면서 상시근로자를 고용할 것 등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국외창업법인의 범주가 넓어 CVC의 해외 출자규제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당초 CVC 제한 규정은 금융자본을 활용한 대기업의 경제력집중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악용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인 안전장치입니다. 이 규정이 약화되면 우려했던 부작용이 커질 수 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총수일가 친인척이 국외창업법인을 세우고 관련 기업집단 CVC가 출자를 해도 규제받지 않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정부는 앞서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축소시켜 사익편취규제 대상인 친인척 범위를 좁혔습니다. 게다가 수출목적 내부거래에 대해 감세하고 해외 자회사 배당에 대해서도 감세해준 탓에 해외법인에 국내자본이 쏠릴 유인도 커졌습니다. 여기에 CVC가 조달하는 차입금은 일정 수준 제한을 받지만 펀드를 조성할 경우 계열사 자금도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제도적 결함이 존재합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벌 방계 도와주려 회삿돈 쓰나”
 
이를 두고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그런(국외창업법인) 기업들은 대부분 재벌 3, 4세들이 세운 미국 스타트업들이다. 미국에서 벤처들이 펀딩하는 데 돈이 없어 못하는 게 아니다. 좋은 기회 있으면 돈은 가게 돼 있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 통해서 펀딩해야 하고 그것도 이제 무제한 펀딩하겠다는 건, 국제적인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못받고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 재벌 3, 4세들이 미국 가서 스타트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결국은 총수일가 방계 가족들 지원하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쓰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했을 때 결국은 국내와 해외 차별이라며 국내도 풀어달란 말이 나올 것”이라며 “처음엔 금산분리 문제 때문에 제한적으로 (CVC)하자고 (정부가)말해놓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다 풀 거라고 우려한 대로 가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최근 경실련이 분석한 결과, 지난해 배당금수익은 기아차 29.8배, 삼성전자 7.4배, LG전자 2.4배, 현대차 2.3배 순으로 전년대비 늘었습니다. 경실련은 해외 자회사 배당금 비과세에 따른 결과로 풀이했습니다. 해외자회사로부터 배당수익에 대한 2023년 법인세 감면액을 추정한 결과, 삼성전자가 7조6815억원, 현대차가 9930억원, 기아차가 9895억원, LG전자가 4645억원, SK하이닉스가 316억원으로 계산됐습니다.
 
이에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해외배당 비과세는 일감몰아주기 증여의제 과세에서 수출거래는 배제시킨 감면정책과 더불어 국내 투자, 기술개발할 것들을 해외로 더 빼 나가라고 부추기는 것”이라며 “해외서 더 많은 이익을 벌어들인 다음 그걸 국내 배당하면 95% 세금을 깎아주니 국내에서 매출할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CVC의 국외창업기업에 대한 출자규제까지 풀리면 국내 자본의 해외 이탈 부작용도 커질 수 있습니다. 
 
CVC 제도 도입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정부가 안전장치로 마련해 둔 규정의 맹점으로 “총수일가로부터 벤처회사 지분을 매수하거나 총수일가에게 벤처회사 지분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규제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었습니다. 투자 실패로 휴지조각이 된 벤처회사 지분을 CVC가 총수일가로부터 고가에 매입하거나, 잠재가치가 매우 높은 벤처회사의 지분을 CVC가 총수일가에게 헐값에 매각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관측입니다. 연장선에서 CVC가 국외창업기업에 제한 없이 투자한 후에도 비슷한 악용사례가 생길 것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입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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