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최근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 (사진=뉴시스)
북한과 러시아가 새로운 형태로 군사협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보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대책을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첫째로, 북-러 군사협력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북한군 정예부대인 폭풍군단 4개 여단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파병된다고 밝혔습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10월28일 한국 정부 대표단한테 브리핑을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군 부대들이 (우크라이나 군대가 진입한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된 것을 확인해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군 파병은) 말이 파병이지 용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답변했습니다. 통상적으로 파병을 하면 자국 지휘체계를 유지하고 자국 군복과 표식, 국기를 사용하는데, 북한 군인들은 자기 군복이 아니라 러시아 군복으로 위장하고 러시아군 통제 아래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정보를 제시했습니다.
파병과 용병은 개념이 다릅니다. 파병은 북한이 교전 당사자로서 러시아와 함께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전쟁 상황에 대한 국제법상 책임과 권한을 나눠 가집니다. 북한이 파병한다면, 현실성은 적지만 우크라이나가 교전 상대국인 북한의 선박이나 항공기, 북한 땅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용병은 말 그대로 개인이나 집단이 돈을 받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바그너 그룹이라는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 PMC)이 러시아 편으로 참여했죠. 미국도 중동 전쟁 등에서 돈을 주고 민간군사기업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이번 움직임은 파병과 용병 성격이 뒤섞인 것 아닐까요? 북한과 러시아가 정부 차원에서 협의하고 있으니, 개인이나 사설 집단이 돈을 받고 움직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러시아가 북한군 병사 1인당 월급 2000달러를 줄 것이라고 국정원이 밝혔는데요. 그 정도 돈을 받아 본국에 송금하면 북한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 부분은 용병 성격 요소이죠. 외화 획득이 북한 움직임의 큰 배경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전투 임무일까? 건설, 수송 지원 임무일까?
북한 군인들이 전투 임무에 배치될지, 전투보다는 건설이나 수송과 같은 지원 임무를 하게 될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시간이 좀 필요하겠죠.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0월28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러시아가 이들 북한군을 우크라이나 국경과 가까운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 병력을 상대로 한 전투 또는 군사작전 지원에 사용하려고 한다는 점을 갈수록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투 또는 지원 임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특히 전투 배치를 막으려고 경고하는 거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과 맺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조약) 4조에 군사 지원 조항이 있다"면서 "4조를 어떻게 다룰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북한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으며 필요할 때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격이 되든 북한 군인들이 대규모로 러시아로 이동해 활동하는 모습 자체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2018년 9월 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북한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행진하고 있는 북한 군인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위해 최소 1500명의 북한군 병력을 배치한 사실을 네덜란드가 확인했다고 루벤 브레켈만스 네덜란드 국방장관이 25일 밝혔다고 유에스 뉴스 & 월드리포트가 로이터 통신을 인용해 전했다. (사진=뉴시스)
둘째로, 우크라이나 전황과 미국 대통령 선거 등 국제 정세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우크라이나 쪽이 지난해 가을 시도한 '대반격'은 실패했죠. 러시아는 동부 돈바스 지역을 점령한 상태로 굳히기를 꾀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쪽이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로 진격해봤지만, 러시아가 반격해 잃은 땅을 되찾고 있습니다. 쿠르스크에 들어간 우크라이나 부대는 보급로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가 매일 제공하는 전황 지도를 보면 알기 쉽죠.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계승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손을 뗄 뜻을 비쳐왔습니다. 미국이 지원을 끊으면 전쟁은 러시아 승리로 금세 끝납니다.
상승세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지원 손 뗄 뜻
해리스 후보는 군사 개입(전쟁) 수단을 적극 활용해서라도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을 유지하자는 전통적인 안보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과, 트럼프 지지를 철회하고 공화당을 이탈해 민주당으로 전향한 네오콘 논객들이 대개 이렇게 생각하죠. 트럼프 중심의 '새로운 공화당'은 다릅니다. 외국에서 전쟁을 많이 해도 미국의 세계 리더십은 강화되지 않고, 재정 부담만 커지더라, 그러니 불필요한 대외 군사 개입을 줄이고 국내 문제에 집중하자고 생각합니다.
지금 판세는 트럼프가 상승세를 타고 있죠. 서방 다른 나라들도 11월5일 미국 대선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어떤 결정을 하지 않을 겁니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한미일 안보실장회의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셋째로, 우리가 주요 안보 사안을 결정할 때 더욱 심사숙고하고 숙의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원 발표 직후에 나토 사무총장과 통화하고 공동 대응을 다짐했습니다. 국정원과 국방부, 외교부로 구성한 정부 대표단을 10월28일 벨기에 나토 본부로 보내 32개 회원국 대사 등을 상대로 북한군 파병 동향을 브리핑했습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포탄을 비롯한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군사 요원을 현지에 파견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북한군 파병' 의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남북한이 우크라에서 대리전, 국가 이미지 손상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외국 언론은 북한과 한 묶음으로 엮어서 "남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리전을 벌이는" 모양새라고 보도합니다. 우리 국가 이미지가 구겨지고 있죠.
전쟁 중인 나라에 군사 요원을 파견하는 것은 극도로 신중해야 합니다. 숫자가 얼마이든 임무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교전 상대국은 그것을 파병이며 참전이고, 군사 개입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도 우크라이나에 군인 파견을 회피하고 있죠.
만약에 정부가 군사 요원을 파견하겠다고 판단한다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헌법 제60조 2항은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 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라고 명시했습니다. 레바논에 파견된 육군 동명부대 같은 유엔평화유지군(PKO) 참여도 해마다 국회 동의를 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부대 단위 파병은 국회 동의를 받지만, 개인 단위 파병은 국회 동의 없이 국방부 장관 재량으로 승인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국방부가 '국군의 해외파병 업무 훈령'에 그런 방식으로 규정해 놓았습니다. 이 훈령은 법률도 시행령도 아닌, 시행령 하위에 있는 시행규칙입니다. 행정부 한 부처가 유지하는 하급 규정을 갖고 헌법 취지를 뒤집으면 곤란하죠.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섣불리 관여하면 우리도 분쟁에 연루될 위험이 큽니다. 헌법 취지를 엄격히 적용하는 게 맞겠습니다.
전쟁 중인 나라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이로써 한국은 해외 군사 지원을 하는 거죠. 군사 지원을 하다가 전쟁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이 사안도 행정부 권한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국회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북-러 군사협력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우리 안보에 최대 위협이 뭘까요? 러시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과 같은 첨단 군사기술을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입니다. 북한이 이런 기술을 확보하면 우리 동맹국인 미국을 타격할 능력까지 갖추게 되지요.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러시아와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북-러 군사협력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대응책을 신중하게,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말하기와 글쓰기, 언론 홍보와 위기관리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