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긴급 이사회를 열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책을 논의합니다. 영풍·MBK파트너스(MBK) 연합의 임시 주주총회 소집 요청과 관련된 논의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의결권 강화를 위해 자기주식을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할 것이란 전망이 언급돼 주목받고 있습니다.
고려아연은 오는 30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본사에서 이사회를 연다고 이사들에게 29일 통보했습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긴급 이사회의 안건은 내일 이사회가 종료된 뒤 그 결과를 공시와 함께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이사회 소집에는 구체적인 의안이 특정되지 않았으며 이사들에게는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앞서 영풍·MBK 연합은 전날 고려아연 신규 이사 선임과 집행임원제 도입을 위한 임시 주총 소집을 청구한 바 있습니다. 이번 긴급 이사회에서 임시주총 소집 청구를 수용할지를 논의할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이 이사진들에게 구체적인 의안을 특정하지 않은 채 30일 이사회 소집 통보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사회 결의를 통해 최윤범 회장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고려아연의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최 회장 측과 영풍·MBK 측, 어느 쪽도 의결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최 회장 측의 의결권 지분은 현대차, LG전자, 한화 등 우군으로 꼽히는 지분을 포함해 기존 34.05%에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로 확보한 베인캐피탈의 1.41%로 약 35.46% 수준입니다. 영풍·MBK 측이 이미 확보한 지분 약 38.47% 대비 3% 포인트(p) 차이 납니다.
이 상황에서 최 회장 측은 긴급 이사회에서 고려아연 자사주 약 1.4%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겨 의결권을 되살리는 방안이 추진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겁니다. 고려아연은 지난 5월 자기주식 취득 신탁 계약을 맺고 자사주 28만9703주(약 1.4%)를 간접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식의 신탁 기간이 내달 8일 종료됩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이 주식을 우리사주조합에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최 회장 측이 지분을 확대할 확률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 안건이 상정돼 이사회를 통과하면 최 회장 측 의결권 지분은 우호 지분을 포함해 기존 34.05%에 공개매수를 통해 우군인 베인캐피털이 추가로 확보한 지분 1.41%, 이번 우리사주에 넘기는 자사주 1.4%를 더해 총 36.86%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이 경우 영풍·MBK 연합이 확보한 지분(38.47%)과의 의결권 지분 차이는 1.61%p 정도로 좁혀지게 됩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계획 등 경영권 방어 방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사진=뉴시스)
영풍·MBK 연합은 최 회장 측의 의결권 지분 확대 가능성에 대해 고려아연의 재무적 피해와 경영진들의 업무상 배임 혐의 등을 명분 삼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1.4%는 전날 종가기준 시가 약 3700억원인 주식인데 이는 고려아연의 연간 인건비 총액과 맞먹는 규모"라며 "이사회에서 결의한다면, 자기주식 공개매수로 약 1.8조원의 부담을 회사에 안긴지 불과 몇일 만에 다시 37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우리사주조합에게 넘기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최윤범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고려아연에 막대한 재무적 부담과 피해를 안기는 결정들을 연이어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기존 경영진의 지위 보전을 위해 안정주주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행하는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지원은 위법행위"라며 "대법원 판례상으로도 주주 간의 지분경쟁 상황에서 일부 경영진의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목적 하에 종업원지주제를 활용하는 행위는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내려져 있으며 이미 확고한 법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별도로 최 회장 측이 이번 이사회에서 영풍·MBK 측이 요청한 임시 주총 소집 요구를 받아들일 확률도 있습니다.
임시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여 영풍·MBK 측이 제시한 14명의 신규 이사가 선임되면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권을 가져오게 됩니다. 하지만, 최 회장 측 입장에서는 영풍·MBK 측의 장내매수로 지분을 사들이면 과반 지분을 확보할 우려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려아연 지분을 일부 쥐고 있는 국민연금과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을 설득하는 게 관건입니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은 지난 22일 국민연금 설득 방향과 판단 전망에 대해 "국정감사 때 박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말씀했던 부분을 들어보면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과 수익률 제고 등의 관점에서 판단을 하시겠다고 했으니 그걸 믿고 기다리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고려아연 CI·영풍 CI. (사진=연합뉴스)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