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에 대해서만큼은 후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신동아와의 인터뷰(2009년 1월5일)에 따르면 육 여사를 생전에 3번 만났다는 이 여사는 “육 여사는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녔으며 남편의 독재를 많이 염려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속의 야당”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육 여사의 신조는 ‘청와대의 귀’였습니다. 작은 소식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라디오를 끼고 다녔고, 재야 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민심의 동향을 끊임없이 파악했다고 합니다.
민심을 파악한 이유는 남편 박 대통령에게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참모들이 많았지만, 최고 권력자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대통령의 부인 정도 돼야 듣기 싫은 이야기도 면전에서 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귀에 꽂히는 말은 두 가지였습니다. “육영수 여사도 ‘청와대 야당’ 노릇을 했다” “아내가 사과를 제대로 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라인’에 대한 질문에 “과거 육영수 여사도 ‘청와대 야당’ 노릇을 했다고 한다”며 “대통령이 국민 뜻을 잘 받들어서 정치를 잘 할 수 있게, 대통령에 대한 아내의 조언을 국정농단화시키는 것은 정말 우리 정치문화나 문화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회견 소식이 발표된 지난 4일 밤 집에 가니 아내가 '사과를 제대로 하라. 괜히 임기반환점이고 국정 성과만 얘기하지 말고 사과를 많이 하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무슨 사과인지를 구체적으로 특정해 달라는 물음에는 ”잘못 알려진 것도 많은데 대통령이 맞다 아니다 다퉈야 하겠냐“며 사과의 대상을 일일이 특정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달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의 핵심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입니다. 집권 이후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국정농단 수준이라는 것이 야권의 주장입니다.
명품백 수수 의혹과 명태균씨와 연루된 선거개입 의혹, 정권을 책임진 여당 대표까지 거론하며 쇄신을 요구하는 ‘김건희 라인’(한남동 8명), 김여사의 각종 정부 인사 개입설 등 김 여사 관련 사건은 조언의 수준을 벗어났다는 게 중론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김 여사를 육 여사에 견주면서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닌 조언 잘하는 내조의 여왕’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아내가 사과를 제대로 하라’고 했다는데, 정작 김 여사는 억울함이 더 크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직접 사과할 계획이 있냐는 질의에 “본인(김 여사)도 아마 억울함도 갖고 있을 것”이라며 “그것보다는 어쨌든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속상해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억울하다는 사람이 문제점이 뭔지 깨닫지도 못하는 마당에 제대로 된 사과가 나올 턱이 없고, 국민들이 김 여사를 보기 싫다고 하니 앞으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겠다로밖에 읽히지 않는 대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인 9월 10일 자살 예방 및 구조 관계자 격려차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들과 마포대교 도보 순찰에 동행하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뉴시스)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평은 ‘정치브로커’ 명태균씨가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점에 재차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장님무사 어깨에 올라탄 앉은뱅이 주술사'
앞으로 남은 윤 대통령의 임기는 2년 반. 눈먼 무사를 뽑은 국민들은 앉은뱅이 주술사의 영적 관심법에 인생을 여전히 맡겨야 합니다. 애처로운 민생들입니다.
오승주 선임기자 seoultub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