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 사건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가 지난 8일 경남 창원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명문대 근처도 못 갔다. 외국 학위도 없다. '서울 유학'조차 언감생심. 스스로 26살까지 '소젖 짠 놈'이라고 했다. 촌 생활을 청산한 그는 휴대전화 대리점을 시작으로, 전화번호부 업체를 창업한 뒤 텔레마케팅(통신판매)에 뛰어들었다. 이후 만학도의 길도 걸었다. 42세 때 창원대학교 산업비즈니스학과에 진학했다. 2024년 한국 정치판을 뒤흔든 명태균씨 얘기다.
소 키우던 명태균의 '여의도 입성기'
그 흔한 국내 석·박사 학위도 없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인들은 그를 '박사님', '선생님'으로 불렀다. 아니, 그 이상 엎드려 모셨다. 소를 키우던 '지방 촌놈'이 정치권 인사들을 떡 주무르듯 했다. KS(경기고·서울대)들도 '명태균의 영향력'을 신봉했다. 그중 일부는 '명태균 리스트' 27인에 포함됐다. 그 스스로 주류 인사들이 "미륵보살로 부른다"고 하지 않았나.
이쯤 되면 한 편의 '풍자 쇼'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볼 수 없는 블랙코미디다.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촌놈. 어린 시절 정규 교육을 받기는커녕 사실상 고아로 자란 한 사내가 2022년 6·1 보궐선거 공천을 좌지우지했다. 앞서 2021년 국민의힘 6·11 당대표 경선에도 손을 뻗었다. 이듬해 제20대 대통령선거는 물론,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경상남도 창원 국가산단 선정 등에 개입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그냥 쇼가 아니다. 거대한 '버라이어티 쇼'다. 이단 교주가 수돗물을 놓고 '생명수'라고 말하자 맹물이 고가의 물로 둔갑하듯, 그도 판도라 상자에 있는 텔레그램과 녹취록을 까자 여야 정치인들이 엎드려 모셨다.
"나 김건희(여사)랑 친해." 이 한마디에 모두 넘어갔다. 권력자와 언제든 통화하는 '특수 관계'가 '진리'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이 '명태균 후광'에 넘어갔다. 그 빛이 얼마나 눈부시던지, 여야 정치인들이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인맥 앞세워 '블루오션' 파고든 '비주류'
조지프 알로이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별거더냐. 20대 중반까지 소를 키워도 권력자 눈에만 들면, 손가락 하나로 주류 정치인들을 부릴 수 있다. 명태균이 몸소 보여줬다. 인맥의 힘은 모든 것을 능가한다. '명태균의 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과거 전화번호부 업체 때 터득한 여론조사 기법을 십분 활용, 여론조작에 나섰다. 그 힘을 앞세워 연줄로 묶인 한국 사회의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개척했다. 윤 대통령 내외 인맥과 여론조작이 맞물리자, 레드오션(포화상태 시장)은 단번에 블루오션으로 탈바꿈했다. 그야말로 '신화창조.'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9월 22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격려 행사'에서 영상을 시청한 뒤 박수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어제 윤 총장(윤석열 대통령)한테 전화가 왔어." 게임 법칙에 의존하는 한국 사회 연고주의 문화를 제대로 꿰뚫었다. 학교에선 절대 배울 수 없는 '전화 한 통' 문화를 일찍부터 꿰찬 셈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홍준표 대구시장·박완수 경남지사·김진태 강원지사, 나경원·안철수·윤상현·김은혜(이상 국민의힘 의원),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에 오른 27명의 정치인이 증명했다.
인맥 하나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것은 아니다. 뛰어난 능력도 한몫했다. 그는 '김영선(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 전인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오세훈(서울시장)·안철수(국민의힘 의원)' 단일화 전략을 짰다. 명태균은 3월 5일 여의도 대표적인 '책사'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되레 세 가지 '단일화 전략'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3월7일까지 '오세훈·안철수'의 접촉 불허. 두 번째는 국민의힘 단일화 협상팀에 '성일종 의원' 포함. 세 번째는 '유선전화 20% + 무선전화 80%' 여론조사 룰 협상 제시. 특히 그는 "세 번째 유선전화 20%는 시간을 끌기 위한 미끼 전술이었다"며 "시간이 흘러 협상 조건의 이슈인 유선전화 비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결국) 안철수 후보 측이 주장한 무선전화 100% 방식으로 협상을 체결했다"고 언급했다.
결과는 오 시장의 승리. 이를 계기로 명씨는 2021년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 2022년 3·9 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보궐선거까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만 2년간 이른바 '명태균 전성시대'를 열었다. 대통령 인맥과 여론조작을 장착한 '작은 다윗'(명태균)은 단숨에 '큰 골리앗'(주류 정치인)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 '명태균의 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일개 민간인의 공천·국정 개입과 여론조사 조작 의혹. 장두노미(藏頭露尾). 진실의 꼬리는 결국 드러나는 법. 벼랑 끝에 내몰린 그는 10월8일 <채널A>와 인터뷰에서 "날 잡으면 한 달 만에 대통령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나"라며 용산 대통령실을 겁박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11일, 창원지검 전담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검사)은 윤 대통령 내외 공천 개입 의혹 등의 핵심 인물인 명씨에 대해 구속영장(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을 청구했다. '법치'는 비선보다 강하다.
최신형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