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이지유 기자] 올 가을 주부들을 괴롭혔던 김장대란이 최근 들어 한풀 꺾이는 모양새입니다. 1포기당 1만원 안팎 수준을 기록했던 배추 가격이 최근 3000원대까지 내려오며 안정세를 보이는 까닭인데요. 이는 가을배추가 본격적으로 출하되면서 수급 안정성이 커지고, 최근 기온 하락에 따른 생육 환경 개선 등 계절적 요인도 맞물린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됩니다. 다만 이 같은 김장대란 현상이 매년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근시안적인 지원책보다는 정부의 중장기적인 측면의 수급 안정 방안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1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11월 농업관측정보 엽근채소' 분석 자료에 따르면 배추 도매가는 지난달 상순 10㎏ 기준 2만4900원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하순에는 1만2040원으로 절반 수준까지 낮아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배추, 무 등 김장 주재료의 소매가 안정세도 뚜렷한 모습입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11일 기준 배추 소매가격은 1포기당 3877원으로 1개월 전 8824원과 비교해 절반 이상 하락했습니다. 또 같은 기간 무 가격은 1개당 3612원에서 2610원으로 1000원 이상 낮아졌는데요.
이 같은 현상은 배추의 출하가 정상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국 배추 재배량의 25%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주산지 해남의 배추 재배 면적은 가을배추 2259ha(헥타르·1㏊는 1만㎡), 겨울배추 1998ha로 지난해에 비해 소폭 증가했습니다.
최근 기온이 낮아지면서 일교차가 커진 점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일교차가 커질 경우 배추 특유의 단맛이 강해지고 속이 꽉 차 단단해져 김장에 적합해지기 때문이죠.
정부의 물량 공급 방안도 효과를 보는 상황입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대책을 통해 김장철 배추 2만4000t(톤), 무 9100t 등 계약 재배 물량을 시장에 공급하고, 마늘 등 양념채소의 경우 정부 비축 물량을 공급해 유통량을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울러 내달 4일까지는 배추, 무 등 김장재료 11개 품목을 최대 40% 할인하는 유통사 행사도 지원하기로 했는데요.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이달 이후 배추 소비자 가격은 더 안정될 전망"이라며 "고춧가루, 양파, 대파 등 김장 부재료도 생산량 증가로 공급이 안정될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대형마트에서는 2000원 미만까지 판매…중장기 수급 안정책도 절실
현장의 경우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배추 가격이 크게 내려간 상황입니다. 실제로 12일 기준 서울 강남구 수서동 소재 이마트 수서점에서는 배추 3포기가 1개의 망에 담긴 상품이 5984원에 판매되고 있었는데요. 이는 1포기당 가격으로 환산할 경우 2000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마트 수서점 매대에서 판매되는 배추 모습. (사진=이지유 기자)
아울러 알타리의 경우 1단이 4480원, 풋고추의 경우 1봉에 2980원으로 예년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입니다. 이날 마트를 방문한 소비자 A씨는 "최근 배추 가격이 많이 떨어졌음을 체감하고 있다"며 "김치를 담글지 말지에 대해 고민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점포 관계자는 "배추 가격이 많이 내려 현재 1포기에 1900원 수준으로 상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배춧값이 안정세를 찾으면서 저녁 무렵이 되면 빠르게 소진되는 추세다. 최근 구매 고객이 워낙 많아져 아예 망으로 묶어 판매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전통시장은 물량 부족으로 상인들이 배추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입니다. 배춧값 하락으로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공급량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서울 강남구 강남개포시장에서는 배추 물량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날 현장에서는 쌈배추가 1포기당 3000원~4500원 수준에 가격이 형성됐고, 청양고추는 1봉에 2000원, 무는 1개에 2500원 수준이었습니다. 최근 내려간 가격이 그대로 반영된 상황입니다.
이날 개포시장을 찾은 소비자 B씨는 "배추 가격이 더 저렴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상품 자체가 없다"며 "하는 수없이 다시 대형마트로 가서 배추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마트에서도 물건이 많지는 않아, 아침 일찍 오픈 런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개포시장의 한 상인은 "배추 공급량이 상당수 대형마트로 가다 보니 우리 같은 전통시장에서는 배추를 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손님들은 계속해서 찾는 상황에서 물건을 구해와도 대형마트 가격인 2000원 수준을 맞추기가 어렵다. 포기하고 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토로했습니다.
강남개포시장의 한 상점에 김장재료들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이지유 기자)
이 같은 김장대란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김장 시즌은 매년 돌아오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선제적인 수급 안정 방안을 마련했어야 하는 것이 맞다"며 "이에 대한 면밀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효율적인 수급 매뉴얼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농수산물은 한 해마다 수확률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 격차를 좁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가격 변동 폭이 커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충범·이지유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