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은 용호상박이라던 세간의 평을 뒤집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 Make American Great Again)를 등에 업고 승리했지만, 재판 중인 점과 포퓰리즘 등으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렸는데요. 국내에서는 재판 중인 대선 후보라는 점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유사점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이 대표의 1심 중형 선고에 반발해 "미국이든 한국이든 최종심은 국민의 투표"라는 색다른(?) 발언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토마토Pick이 '다르지만 비슷한' 트럼프 당선자와 이재명 대표를 비교했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
전혀 다른 두 사람
사실 트럼프 당선인과 이 대표는 많은 점에서 상반됩니다. 트럼프 당선인의 진영인 공화당은 미국의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정당이지만, 이 대표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우리나라의 진보개혁 진영을 상징하는 정당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도 정반대라는 뜻입니다. 둘은 출발점도 명백하게 다른데요. 트럼프 당선인은 소위 백만장자인 반면 이 대표는 아버지가 화전민이었을 정도로 어려웠던 그야말로 흙수저 출신입니다. 다만 이렇게 여러 면에서 다른 두 사람의 행보를 보면, 평행이론에 가깝게, 묘하게 겹치는 모습도 꽤 많습니다.
대선 고배와 선거 승리
두 사람은 대선에서 패배해 고배를 마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1만여표의 차이로 졌고, 이 대표는 2022년 윤석열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패배했죠. 그러나 두 사람은 대선 이후로도 여전히 차기 대권주자로 평가받았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핵심 지지층을 발판으로 재선에 성공했고, 이 대표 역시 당 대표 연임 뒤 총선에서 대승을 견인하면서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됐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심각한 위협을 겪은 점도 같은데요. 트럼프 당선인은 귀에 총을 맞았고, 이 대표는 칼에 찔리는 악재를 겪었습니다.
강력 팬덤, ‘마가’와 ‘개딸’
트럼프 당선인과 이 대표는 견고한 핵심 지지층, 이른바 ‘팬덤’을 갖췄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에게는 상술했듯 ‘마가’가 있고, 이 대표에게는 ‘개딸’이 있습니다. 이 강성 지지층들은 두 정치인이 정치적 위기에 맞을 때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되어 곁을 지켰습니다.
-마가(MAGA)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당선인의 슬로건을 반영한 강성 지지층을 뜻합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관련된 재판에서 판사를 위협하는가 하면 그를 위한 시위까지 주도하기도 하는데요. 지난 2021년 1월에는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하던 시위대가 대선 결과에 불복해 미국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하기도 했습니다.
-개딸 : ‘개혁의 딸’의 줄임말로 이 대표의 극단 지지층을 뜻하는 세력입니다. 초기에는 여성 지지자들이 주축이 됐으나 현재는 이 대표 지지세력을 포괄하는 동시에, 그들을 비하하는 멸칭으로도 쓰입니다. 이 대표와 다른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을 가리는 ‘수박’ 색출 논란을 촉발했으며, ‘수박’으로 낙인이 찍힌 의원들을 겨냥한 문자 테러 등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충성파 위주 참모진 구성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인선에 여념이 없는데요. 트럼프 1기에 비해 더 강력한 ‘충성파’ 위주의 인선을 진행 중이죠. 선거 과정에서 가장 헌신적이었던 인사들이 요직을 꿰차고 있습니다. 동일 비교는 어렵지만, 민주당 총선 공천과 유사한 흐름인데요. 비명계 숙청, 친명계의 약진이 특징적이었죠. 총선 이후 꾸려진 주요 당직 인선 등도 핵심 측근들로 꾸려졌습니다. '이재명 1극 체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 충성파 인사
-맷 게이츠(법무부 장관 지명) : 공화당 내 대표적 친트럼프 인사.
-토드 블랜치(법무부 차관 지명)·에밀 보브(법무부 수석 부차관보 지명)·존 사우어(법무부 송무차관) : 성추문 입막음 비자금 사건, 연방 기밀문건 유출 사건, 면책특권 관련 소송 등을 담당한 변호인들.
-크리스 라이트(에너지부 장관 지명) : 리버티에너지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 트럼프 당선인을 위한 모금 행사 주최.
-피터 헤그세스(국방부 장관 지명) : 폭스뉴스 진행자. 미국 우선주의를 자처하는 등 이념적 공감대.
-마코 루비오(국무부 장관 지명) : 트럼프 당선인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된 충성파.
△친명계 인사
-김기표·김동아·박균택·양부남·이건태 :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 등 사법 리스크 변호.
-김우영·김준혁·양문석 등 : 강성 친명계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소속.
사법리스크 뚫은 트럼프
첩첩산중 이재명 운명은?
두 정치인의 가장 도드라진 공통점은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성추문 입막음 돈 의혹,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등 수많은 사건으로 기소됐습니다. 이 대표도 대장동·백현동 개발특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수많은 재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정치인은 이런 사법리스크 극복을 위해 오히려 강수를 두는 스타일입니다. 이런 대응들이 때로는 대중들의 감성만 자극하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난민 문제 등과 관련해 강력한 장벽을 세운 게 대표적입니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한 트럼프의 전략은 결국 사법리스크를 뚫어냈고, 마침내 재선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여러 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도 '먹사니즘'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의 현금지원 주장은 고물가 등으로 힘겨워 하는 서민들에게 여전히 소구력이 있습니다. 최근엔 대정부 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요. 정치권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 극복을 위해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바 있습니다. 이 대표가 과연 트럼프처럼 사법리스크를 돌파하고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까요? 그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