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권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코스피 지수는 2400선까지 떨어지면서 하락세를 보였는데요. 해외 시장과 비교하면 국내 증시만 두드러지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업계에선 국내 증시의 고질병을 지적합니다. 소액주주를 무시하고 기업의 오너와 재벌에 편향된 문화를 가졌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치권은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야당인 민주당은 적극적이지만, 여권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통과가 불투명합니다. 토마토Pick에서 국내 증시가 가진 여러 문제를 두루 짚어봤습니다.
소액주주만 피해
최근 한국 증시는 폭락장이 이어지는 등 침체기에 빠진 모습입니다. 특히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마저 자국 시장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위기의 징후 입니다. 업계에선 잘못된 국내 기업문화가 개미를 내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내 기업은 소액주주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오너와 대주주에 편향된 태도는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비슷합니다. 대주주인 오너가 경영상 잘못을 저질러도 큰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해 혈세를 투입하기도 합니다. 개미가 등을 돌리는데, 외국인 투자자들은 볼 것도 없습니다.
미국으로 떠난다
과거 미국 증시는 낯선 데다 시간대도 달라 투자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최근 기술이 발달하면서 미국이 가까워졌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클릭 몇 번으로 미국 주식을 살 수 있고, 관련 소식을 접하기도 쉽습니다. AI(인공지능) 번역 성능도 좋아져 해외 증권사 리포트를 읽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국내 증시에 등을 돌리고 미국 증시에 뛰어든 이른바 ‘서학개미’가 늘고 있는 이유입니다. 서학개미들은 미국 주식의 장점에 빠져 한국 주식을 사려 하지 않습니다. 미국 주식은 배당률도 높습니다. 최근 정부가 환율 방어에 실패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까지 오르기도 했는데요. 환율이 오르면 미국 주식 가치도 자연스레 오릅니다. 서학개미들 처지에선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할 이유가 늘어만 갑니다.
대체재된 코인 시장
대체 투자처는 미국 말고도 또 있습니다.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가상자산 시장입니다. 특히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많은 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국내 증시에서 빠진 돈도 대규모로 가상자산 시장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주식시장의 거래대금을 넘는 거래량을 보이고 있는데요. 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의 24시간 총거래 대금은 20조4716억원이었습니다. 이는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하루(15일) 거래대금을 합한 것(18조8637억원)보다도 약 1조6천억원 더 많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업비트의 일주일 거래대금이 코스피의 거래대금보다 많다는 결과도 나왔는데요.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의 일주일 거래대금은 64조2957억원이었으며, 코스피 거래대금은 58조2851억원이었습니다.
경제 아닌 문화의 문제
증권가에선 한국 증시가 하락할 때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지적합니다. 잘못된 기업문화 탓에 국내 증시가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한다고 호소합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는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오너의 경영권이 있는 주식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거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유상증자를 하거나, 유력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분리해 상장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고려아연 사태 : 최근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한국 증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고려아연은 두 집안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서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요. 이 결정으로 인해 특정 주주는 이득을 보지만, 기존 소액주주들은 피해를 보게 됐습니다. 고려아연의 신주발행 결정은 회사를 넘어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을 키웠습니다.
-두산 분할 문제 : 두산그룹이 지배구조를 개편하며 분할, 합병하는 것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그룹 내 '알짜기업'인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로보틱스로 가져오는 게 핵심입니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한 합병비율 때문에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한 총수일가의 두산밥캣 지배력이 높아진다는 평가도 이어집니다.
-LG화학 분할 논란 : 개미가 국내 증시에 등을 돌린 결정적 사건을 꼽자면 지난 2020년 LG화학의 물적분할입니다. LG화학은 2차전지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했는데요. LG에너지솔루션은 코스피 시가총액 3위에 오를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그러나 LG화학은 물적분할 이후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의 몫이었습니다. 해당 논란 이후로 상법을 개정해 국내 증시의 고질병을 해소하자는 여론이 생겼습니다.
상법 개정이 해법
상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는 야당인 민주당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핵심내용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겁니다. 최근 민주당은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기업 투명성을 높이면 기업 가치도 제고되고, 이는 시장 투명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부, 여당의 비협조 : 그러나 여당과 정부는 상법 개정에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상법 개정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섣불리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재계에서 반대하기 때문인데요. 한덕수 국무총리는 "경영환경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있어서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침묵 중입니다.
-재계, 강력한 반대 : 손경식 경총 회장은 "이사 충실 의무를 확대하면 정상적인 경영 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헤아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재계에선 소액주주들이 개정된 조항을 근거로 배임죄 고발 등을 남발하면 사법리스크가 커질 것을 우려합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신속한 경영 판단이 지연되면서 경쟁력이 악화되면 소액주주도 손해를 본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안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유심히 지켜볼 일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