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게 되면서 '공포-백악관의 트럼프' 책을 다시 폈습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탐사보도의 대명사가 된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1기'의 난맥상을 취재해 2018년에 쓴 책입니다.
당시 발간 1주 만에 판매 부수가 110만부를 넘어설 정도로 화제였습니다. 밥 우드워드나 트럼프의 이름값도 있었겠으나, 내용 자체가 '공포'였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책의 서문은 모두 한국 관련 사건들입니다.
우선, 트럼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한다며 한국 대통령에게 보내려는 서한을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서 훔쳤다는 일화입니다. 게리 콘은 그렇게 해도 "백악관과 트럼프 마음의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트럼프가 그 편지를 기억해 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 그렇게 됐다는 겁니다.
두 번째도 한·미 FTA와 관련돼 있는데요. 국가안보와 관련해서도 한·미 FTA를 폐기하면 안 된다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트럼프는 한국 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유지하는데 어째서 미국이 한 해 10억달러를 내고 있느냐고 격노합니다. 그러면서 미국 내로 옮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매티스는 "우리는 한국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미국)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국을 돕고 있는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트럼프 1기에서 국토안보부 장관을 거쳐 백악관 비서실장을 맡은 짐 켈리는 소규모 회의에서 트럼프에 대해 "그는 멍청이다. 그에게 무언가를 납득시키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그는 궤도를 이탈했다. 우리는 미친 세상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는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제임스 매티스, 존 켈리 그리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을 '천방지축 트럼프'를 말리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라 불렀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트럼프는 더 강해져서 돌아왔습니다. 대통령 경험도 했고, 대선에서 넉넉하게 이긴 데다 상원과 하원, 그리고 연방대법원까지 장악했습니다. 그 경험과 힘으로 백악관 참모와 내각을 미국이 아니라 트럼프 개인에 충성하는 '트럼프 키즈'들로 채우고 있습니다. 실세로 등장한 트럼프 주니어는 아예 "아버지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용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속도도 빠릅니다. 당선 확정 열흘 만에 내각 전체 장관 16명 중 절반인 8명을 채웠습니다.
이런 미국을 상대하려면 우리에게는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도 '정치 초짜'가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유독 '트럼프 2기'를 두려워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닙니까?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