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담화에서 공천개입 의혹 등에 대해 답했던 대통령의 화법이 뇌리에 남습니다. 대통령실과 여당 측에선 소탈하거나 박절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들처럼 묘사했죠. 하지만 뭐든 두루뭉술했던 답변에 답답해한 반응들도 많았습니다.
문득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곱씹게 됩니다. 국가의 존립 가치는 자유와 법 앞의 평등에 있습니다. 그 가치가 수호되는 국가의 국적도 이민을 통해 선택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런 국가가 아니면 국민이 소속될 유대감은 약해집니다. 공공을 위해 수호할 가치가 훼손되면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도 심해집니다. 우리 헌정사엔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없어 탄핵했던 판례도 남았습니다.
헌법은 우리 국가의 정체성이 민주공화국임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민주는 직접선거로 절차적으론 지켜집니다. 그에 비해 공화는 부족합니다. 공화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적어도 법 앞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규칙이 적용된다는 신뢰가 필요합니다. 요즘 세태에 비추면 모호한 감이 있습니다.
공화국의 뿌리는 깊습니다. 심지어 기원 전의 일입니다. 고대 로마 공화정까지 올라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사를 바꾼 혁명은 개인의 부정이었습니다. 로마 왕이었던 타르퀸의 아들이 루크레티아를 능욕했던 사건입니다.
타르퀸의 아들이 루크레티아를 성폭행했습니다. 이후 루크레티아는 남편과 가족, 친지를 불러 타르퀸의 아들을 처벌해 달라며 자결했습니다. 가족들은 죄를 짓는 것은 정신이지 육체가 아니라며 의도가 없었다면 죄도 있을 수 없다고 만류했지만 가슴에 칼을 찔러넣은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반란이 촉발돼 타르퀸은 왕위에서 물러났습니다. 로마는 두 명의 집정관이 서로 통제하고 권력을 제한하는 공화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집정관 중 한명은 루크레티아를 위해 폭군을 타도하기로 맹세했던 브루투스였습니다.
어느날 타르퀸의 복위를 음모했던 세력이 발각됐고, 이 사건을 다루는 민회가 열렸습니다. 판사석엔 집정관인 브루투스가 앉았습니다. 그런데 처벌 대상자들의 명단에 그의 아들 두명도 올랐습니다. 군중 속에선 그의 가족이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는 걸 원치 않으니 사면해도 괜찮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브루투스는 아들들을 처벌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브루투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들은 벌거벗겨져 채찍질 당하고 참수됐습니다. 브루투스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고, 로마인들은 그의 공화정에 대한 헌신을 칭송했습니다.
이것이 로마의 덕이란 ‘비르투스(virtus)’의 어원입니다. 사적 유대관계를 제쳐두고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게 로마인들이 칭송했던 덕목의 핵심입니다. 이 일화는 후대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도 로마 공화정이 회자됐습니다.
지금의 세태와 몹시 다른 감정을 일으킵니다. 우리도 선대가 목숨을 걸고 수호했던 민주공화국을 물려받았습니다. 지금 그 가치가 온전한지, 후대에겐 어떻게 인식될지 떠올리게 됩니다. 국가 소멸론의 근저에는 인구 문제를 넘어선 원인이 있을 겁니다. 명예와 공익에 헌신하는 자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유대감이 사라진 데서 오는 게 아닌지 역사에 비춰봅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