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한국 정부의 불참속에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5년 7월, 나가사키현 군함도(하시마) 등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 일본 측 사토 구니 유네스코 대사는 당시 조선인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against ther will)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undernarsh condition)에서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다면서, 방문객 등에게 이를 알리는 인포메이션 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일본, 2015년 군함도 등재 때 '강제동원' 인정하고 먹튀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 약속을 믿고 군함도 등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후 일본 총리 역임)은 사토 대사의 발언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군함도를 알리는 '산업유산 정보센터'는 2020년 3월 문을 열었으나, 최소 800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을 했다는 내용은 없었고 오히려 살기 좋은 곳이었다고 왜곡했습니다. 센터 위치도 군함도가 아니라 도쿄 신주쿠였습니다.
올해 7월, 윤석열정부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1500여 명이 강제노동을 당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했습니다. 외교부는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 (군함도 등재 때) 이미 정리됐다"며 등재에 찬성했습니다.
일본은 강제노역 관련 '전체 역사'를 알리는 전시물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강제동원'을 알 수 있는 전시물은 없었습니다. 박물관 위치도 사도광산에서 2km 떨어진 외진 곳이었습니다.
'일본이 묵살'했는데도…윤석열정부 사도광산 등재 '찬성'
군함도 등재 때와 똑같이 당했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결국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한·일 간 논의과정을 묻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 질의에 외교부는 결국 "사도광산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쪽에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일본이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등재에 찬성했던 겁니다. 등재 결정은 표 대결이 아니라 만장일치제이기 때문에, 한국만 반대해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국측 유족과 참석자들이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때 일본이 약속했던 추도식이 결국 파행됐습니다. 지난 24일 일본은 일본 측 인사들만 참석한 가운데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추도식 행사를 했고, 25일에는 박철희 주일대사와 한국 유족 9명 등이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추도식을 한 겁니다.
일본 주관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차관은 추도사에서 조선 출신 노동자들에 대해 언급했으나, 강제동원에 대한 인정이나 사죄 표현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 대표 추도사에 강제동원 언급 없었다…'자초한 참극'
외교부는 일본 주관 추도식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 "일 측 추도사 내용 등 추도식 관련 사항이 당초 사도광산 등재 시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추도식 파행의 가장 큰 원인이 추도사에서 조선인들에 대한 강제동원을 언급하지 않았고, '추모'보다는 '감사'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설명에 대해 비판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일본이 '강제동원'을 부인하는데도 윤석열정부가 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해줬다는 점에서, 일본의 추모사 내용은 이미 예견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광산 별도 추모식은 윤석열정부가 '자초한 참극'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군함도나 사도광산에 이어 또 다른 조선인 강제동원 시설들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어 더 큰 파문이 예상됩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박수현 의원이 국가유산청에서 입수해 지난달 7일 공개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에 대한 유네스코 등재 추진 현황' 자료를 보면, 아시오광산과 구로베댐이 '세계유산 잠정일람표 후보 자산'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유산 등재는 '잠정일람표 후보 자산 기재'와 '잠정목록 등재'를 순차적으로 거쳐야 합니다.
아시오광산은 도치기현 가미쓰가군에 있던 구리 광산으로 한때 동아시아 최대 구리산출지였는데요. 1946년에 일본 후생성이 "조선인 노동자 2416명이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고 인정했던 곳입니다. 구로베댐은 일본의 북알프스로 불리는 도야마현 니카니카와군 구로베강에 건설된 수력발전 전용 댐으로, 댐 건설에 조선인 노동자 1000명 이상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제동원 역사' 언급도 없었던…'세계유산 지정' 첫 제안서
지난달 23일 MBC는 “일본 지방정부가 이 시설들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달라며 처음 낸 제안서를 MBC가 확보해 확인해 봤더니, 강제동원의 역사는 아예 언급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습니다. 박수현 의원의 폭로가 사실로 확인된 겁니다.
아시오광산과 구로베댐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문제와 관련해 이달 19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갈등과 협력'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박수현 의원은 정부에 대해 "참담했던 사도 광산 굴욕외교 재발을 막기 위해 선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아도 등재에 찬성한 전례를 만들어 놓은 정부가 적극 대응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